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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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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균, 한지민 주연의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 원작 소설 <굿바이, 욘더>. 10여 년 전 제4회 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했던 작품인 만큼 드라마화하면서 소설도 예쁜 옷을 입고 재탄생했습니다. 오랜 세월 명작 SF로 입소문 난 소설이라는데 저는 6부작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었고,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도 드라마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줄기가 되는 욘더 세계관은 드라마에서도 그대로 이어지지만, 몇몇 인물 관계나 결말에 이르는 여정이 드라마 각색 과정에서 달라진 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드라마에서는 신하균 배우의 짙은 감정선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면, 소설은 그 감정선의 흐름을 자세히 엿볼 수 있습니다. 테드 창 작가의 소설을 처음 만났을 때 과학적 언어를 문학적 감수성을 얹어 표현하는 예술성에 놀라워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느꼈어요. 따스한 온기가 가득 배어 나오는 듯합니다.
초연결, 사물인터넷, 사이버 물리 공간 같은 용어가 낯설었던 10여 년 전에 몇 년 뒤, 수십 년 뒤 우리 삶은 얼마나 많이 변할까를 상상하며 '미래가 또 하나의 신화'라는 사소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이야기 <굿바이 욘더>.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홀로그램 화면을 띄워 작업하고, 모든 것들이 네트워크화된 새로운 한국의 '뉴 서울'입니다. 취향에 맞게 신체를 사이보그화하는 세대와 함께 로우테크 히피라 불리는 아날로그의 향수를 간직한 세대가 함께하는 과도기입니다.
소설의 화자 나, 김홀은 재발하는 암을 앓다 죽은 아내 이후를 그리워합니다. 이후가 없어진 세상에서 눈을 뜨며 살아가는 것이 어색합니다. 익숙했던 일상이 낯설어집니다. 그렇게 그만의 애도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보, 나야. 나 여기 있어."라며 죽은 아내로부터 온 메일. 자신을 만나러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내가 살아생전 기억을 보존해 남겨뒀던 겁니다. 그 기억을 인공지능 아바타로 구현해 VR 기기로 서로의 아바타가 만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녀의 모습을 한 아바타에게 "보고 싶었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만큼 생생하고 현실적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추모 사이트와는 다른 곳이었습니다. 그저 인공지능에 덮어씌운 메모리에 불과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모습과 기록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바타는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고 학습하며 점차 의도된 인격으로 성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딥러닝 인공지능 아바타인 셈입니다.
처음엔 너무나도 생생해서 거부감이 들었지만 서서히 아내의 아바타를 '이후'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마음의 치료에도 도움이 되는듯합니다. 그녀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이 예전만큼 절실하지 않게 됩니다. 언제든지 VR 고글을 쓰면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자살로 추정되는 의문사가 급증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기억을 그곳에 올리고 방문하는 소녀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여기 와서 나와 함께 살지 않을래?"라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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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다운로드해서 인공지능에 보존하는 기술 이면에 자리 잡은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는 '나'. 이제 욘더가 등장합니다. 욘더Yonder. 저기, 저편의. 그곳은 단순히 아바타로 만나는 것을 넘어 불멸 천국 같은 곳입니다. 아무나 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세계입니다. 그곳에 가려면 이쪽 세상의 사람이 죽어야만 합니다.
욘더는 멋진 신세계일까요, 기술의 디스토피아일까요. 김장환 작가는 소설 속 반미래학자와 불멸 천국을 이야기하는 미스터리한 인물을 통해 기술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을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의심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삶으로 작용하는 기술 발달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일반인들의 모습을 주인공에게서 엿볼 수 있습니다. 욘더의 비밀이 밝혀지는 결말에 이르르면 꽤 충격적입니다.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뇌를 다운로드하고 업로드 하는 기술에 대한 소재는 많은 SF 영역에서 다뤄졌고, 저마다 매력이 있는데요. <굿바이, 욘더>는 조금 더 애틋한 느낌입니다. 사랑과 가족애라는 감정이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는지, 불멸을 향한 또다른 모습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