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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드 - 감옥 안에서 열린 아주 특별한 철학 수업
앤디 웨스트 지음, 박설영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1월
평점 :
“내일 아침이면 나는 난생처음 감옥에 가게 된다.”
영국 철학재단에서 일하는 앤디 웨스트. 2016년부터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저자 개인 사정이 남다릅니다. 아버지, 형, 삼촌이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이 사실을 공개적인 글에 밝힌 건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재소자들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교도소 철학 수업을 제안받은 겁니다.
<라이프 인사이드 (원제 The Life Inside)>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가 아니라 감옥 안에서 자유, 용서, 욕망, 인종 차별 등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재소자들은 때때로 번득이는 발상을 펼쳐 보이며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열린 시각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죗값을 치르는 수감자라는 선입견이 알게 모르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형과는 돈독한 우애를 나누고 있는 저자입니다. 형이 교도소를 들락날락할 때마다 자신은 바깥에서 행복한 생활을 한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짙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형이 감옥에 있는데 이딴 게 뭐가 중요하지? 하며 공허한 기분이 들기 일쑤입니다. 사회적 낙인을 찍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엔 아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아버지와 형의 수감 생활은 대물림된 죄의식으로 나타납니다. 그와 함께 교도소 철학 수업을 하면서 교도소라는 환경과 수감자들이 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도 합니다. 갱생을 위한 철학 수업이라는 큰 목표가 있지만 더불어 그의 머릿속 사형집행인을 마주하고 치유해가는 여정을 함께 보여줍니다.
수업은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으로 끌어나갑니다. 첫 수업 주제가 '자유'였는데 자유라는 방대한 키워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신화를 가져옵니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해역을 지나갈 때 유혹의 노래를 듣지 못하도록 선원들에게 밀랍으로 귀를 막게 했고, 자신은 돛대에 묶었습니다. 하지만 한 선원이 밀랍을 빼고 노래를 듣곤 바다에 몸을 던지게 됩니다. 여기서 귀를 밀랍으로 막은 선원, 오디세우스, 귀에서 밀랍을 뺀 선원 중 누가 가장 자유로울까라는 질문을 던진 겁니다.
수감자들의 답변이 흥미롭습니다. 그중 특히 인상 깊은 대답은 귀를 밀랍으로 막은 선원이 자유롭다고 꼽으며 자신에겐 바깥사람들한테 없는, 선택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밖에선 문제에 휘말릴 일이 너무 많다며 오히려 선택권이 없는 게 자유롭게 느껴진다는 거였죠. 이처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명 한 명 저마다 개성이 넘칩니다. 입을 열 때마다 제발 말을 끊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형이상학적인 말을 내뱉는 이도 있고, 올 때마다 다음 주에는 못 올 거라는 말을 던지면서도 계속 나오는 이도 있고, 무료해 하는 이도 있고...
철학 수업이지만 수업 그 자체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저자의 일상과 수업 전후에 생기는 에피소드가 풍성합니다. 유머 감각까지 예사롭지 않은 저자 덕분에 읽는 맛이 좋았습니다. 질문을 던지면 재소자들이 서로 한 마디씩 툭툭 던지며 (때로는 샛길로 빠지기도 하지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 생각을 나눌 뿐입니다. 한 줄 정답을 찾고자 하는 성격이라면 열린 철학 방식이 오히려 어렵거나 낯설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감옥에서의 철학 수업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떨쳐낼 수 있을까요. 수치심에 짓눌려 말도 하지 않던 재소자가 결국 자신의 삶에 다른 것들을 위한 공간을 허락하는 걸 보며 그 역시 공간을 허락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만성적 자기의심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참고할 만한 본보기가 되는 사례입니다.
감옥 안 철학 수업. 굳이 왜 철학을 배울까요. 어느 재소자도 도대체 철학이라는 게 뭐에 써먹는 건지 물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이후 다른 재소자로부터 들을 수 있습니다. “철학이 맘에 들어요. 내게도 정신이 있다는 걸 일깨워줘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