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란
류서재 지음 / 화리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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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그린 난초, 석파란. 류서재 작가의 <석파란>은 흥선대원군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소설입니다. 황금펜 영상문학상 수상작,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작, 고대문학신예작가상 수상작으로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드라마, 영화에서 접한 흥선대원군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결을 만나는 시간이 될 겁니다. 


부제 '방안에서 천하는 본다'는 것은 왕족으로 살면서도 숨죽인 채 머리를 숙이고 살아야 했던 철종 시대 흥선군이 굳게 닫힌 방안에서 천하를 바라보며 난을 치고 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흥선대원군은 실제 조선 말기 대표 문인화가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로부터 난치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흥선군의 호 석파를 따서 그의 난초 그림을 석파란이라 부릅니다. <석파란>을 읽으며 정치적 삶에 가려져 알지 못했던 문인화 이하응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석파란 11점의 그림과 함께하니 방안에서 난을 치는 흥선군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당시 조선은 김병학을 중심으로 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고 동학, 서학, 성리학 삼파전의 양상으로 들썩이던 때였습니다. 소설 <석파란>에서는 동학 창시자 최제우, 프랑스 선교사를 통해 민중의 시선을 드러내는 한편 일본의 신문물을 경험한 김옥균, 권력의 배경으로 변질된 서원의 선비, 뒷방 신세가 된 조대비를 등장시키며 복잡한 조선의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상갓집 개라는 소리를 들으며 파락호 생활을 하던 흥선군 이하응이 둘째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까지의 상황을 다룬 소설 <석파란>. 서원 철폐 및 쇄국 정책을 펼친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행보의 근거를 이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흥미로운 건 고종의 형이자 흥선군의 장자인 이재면과 훗날 명성황후가 될 민자영의 인연이 허구적 사건으로 펼쳐진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이 소설은 인물관계를 제외한 사건들은 모두 허구이지만, 역사적 사실 위에서 흘러가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즐거운 상상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단조롭고 단순하지만 다른 색깔이 필요하지 않은 만큼의 독특함이 담겨 있는, 먹물의 농담만으로 색을 만드는 묵란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묵란을 치는 흥선군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들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맹물을 묻힌 붓으로 방바닥에 못다 한 말을 적어 내려가는 이하응의 장면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설정이라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이하응에게 묵란은 그림 이상의 것이었고 유일한 탈출구였다." - 석파란 


겉으론 방안에서 묵란이나 치는 사람으로 보일 뿐이었지만 수천 장의 그림을 그리며 그가 품은 이상을 고뇌한 흔적들의 세월을 보여준 소설 <석파란>. 우회적인 화법을 펼치는 권력자들의 말싸움, 꼰대들을 향한 MZ 세대의 거침없는 발언과 같은 당시 젊은 유생들의 토론 현장 등 뜻밖의 재미가 곳곳에 담겨있는 소설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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