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하고도 사소한 기적
아프리카 윤 지음, 이정경 옮김 / 파람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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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 우연히 마주친 한국인 할머니의 "유 아 투 팻!" 한 마디에 한국 음식에 빠져 폭식증을 극복하고 건강을 되찾은 아프리카 윤의 치유 에세이 <우연하고도 사소한 기적>. 


카메룬계 미국인 '수잔 아프리카 엥고'는 미디어 사회활동가로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올린 인물입니다. UN 대사관 아버지와 사회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만큼 일찍이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온 수잔. 성공적인 커리어를 달렸지만 음주, 우울, 폭식 그리고 비만으로 이어지는 생활이 그의 삶을 좀먹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두 사람 몸무게가 되면서 자기혐오에 빠지는 악순환에 이릅니다. 


외교관 과정에서 태어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을 보면서 자란 수잔은 기근, 에이즈, 가난, 고아 등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빠져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외로움을 해결하진 못 했던 겁니다. 뉴욕은 거대한 용광로이지만 그다지 용해되지는 않은 곳이라고 고백합니다. 지속적인 인종차별이 일상화가 된 삶. 아프리카인들은 대개 브롱스나 퀸스에, 러시아 유대인들은 브루클린, 한국인은 퀸스와 뉴저지, 백인들은 맨해튼... 식으로 모두의 삶이 분리되어 있음을 경험합니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뉴저지에서도 지낸 수잔은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에 노출되는 횟수가 많았습니다. 김치와 한글은 물론이고 찜질방 문화에도 익숙하고 때밀이 체험도 좋아합니다. 뜨끈한 돌침대에서 힐링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어느 날 한인 마트에서 시식용 빵을 잔뜩 먹고 빵을 사는데 뒤에서 들리는 한 마디. "자네는 너무 뚱뚱해." 


'나한테, 지금, 누가, 대놓고 살쪘다고 말했나?'. 그 순간 심장은 쿵쾅거리고 울컥 우울감이 올라옵니다. 그런 무례한 말을 한 사람은 곱디고운 외모의 한국인 할머니였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능력인 '눈치'도 없이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것에 놀란 수잔. 무례한 말과는 달리 할머니의 친절하고 상냥한 말투에 웬일인지 따뜻한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놀란 심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냥 뒤돌아섰다면 지금의 아프리카 윤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뭘 먹으라는 건가요, 그럼?" 이 한마디는 그의 인생을 바꿉니다. 





할머니는 한인마트의 과일과 채소 코너에서 재료를 선택하라는 조언을 합니다. 재료를 왕창 구입한 이후 만드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한인마트에서 만납니다. 맛난 한식을 만들어 먹은 날에는 와인 없이도 잠을 잘 잤고, 무엇보다 살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시식대에서 더 이상 시식하지 않고 군것질도 끊어버립니다. 일명 한식 비건 생식 다이어트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간 겁니다. 식단의 균형과 다양성이 풍부한 한식의 매력에 빠져듭니다. 고도비만에서 1년 만에 50킬로그램이 감량됩니다. 상담 치유와 병행한 시점이라 음식, 운동, 정신 치유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집니다. 스스로 온전히 치유하고 싶은 욕망이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한국인 할머니의 조언으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한식은 더 이상 다이어트를 위한 음식이 아니라 인생 푸드가 됩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 음식에 대한 감상을 풍부하게 할 줄 아는 수잔. 11월의 생일에는 한국의 김장 문화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K-푸드 전도사가 됩니다. "한식의 상차림은 자연에 대한 공경이자 한 편의 소네트다."라는 말처럼 한식 예찬이 이어집니다. 


운명을 바꿔놓은 또 한 명의 한국인이 있습니다. 아이오와 시골 마을에서 만난 한국계 미국인은 그를 '아프리카 윤'이 되도록 했습니다. 세 명의 아이들의 엄마로 만들어줬습니다. 비만과 우울로 지쳤던 시기에 회복과 치유에 도움 되었던 한식은 육아 스트레스와 갑상선 항진증을 앓던 시기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한국 문화에 스스럼없이 빠져들며 한국 엄마들과 할머니들의 관계맺음을 통해 경이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연대의 가치를 몸소 겪기도 합니다.


한국 음식으로 시작해 하와이에서 거주하며 한국을 알리는 문화 엔터테인먼트 기업 블랙유니콘의 CEO로 활동하는 아프리카 윤. 건강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 여전히 성장 중인 그의 행보를 응원합니다. 너무나도 흔하고 식상하게 먹는 우리 음식의 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많은 한국인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프리카 윤이 예찬하는 한국 음식 설명을 듣고 있자면 정말 놀라운 마음뿐이더라고요. 음식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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