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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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할머니의 열두 고개처럼 이어령이 들려주는 한국 고유의 문화유전자 이야기가 꼬불꼬불 이어지는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이제껏 몰랐던 출생의 비밀로 시작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그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국인 이야기 완결편 <너 어디로 가니>. 


식민지 시대를 살아낸 이어령 저자의 경험이 듬뿍 담긴 책인 만큼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이어령 저자의 앞세대는 서당 세대였지만 그는 소학교에 입학해 다음 해 국민학교로 바뀐 학교 세대입니다. 1930~40년대 시절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첫 붓글씨 연습으로 쓴 건 바로 입춘대길 한자였다고 합니다. 동아시아인의 문화 유전자로서 작용해 온 한자. 소학교 입학 전 서당을 다닌 경험이 있는 그의 첫 수업은 <천자문>이었습니다. 이때 왜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에서부터 의문을 가진 이어령 선생님. 왜 하늘은 파란데도 서당에 가면 까맣다고 하는가가 지식에 대한 그의 첫 궁금증이었습니다. 이 궁금증은 '검다'라는 말 하나에 얽힌 동서양의 역사와 사상이 담긴 이야기 보따리로 이어집니다. 


1940년에 소학교에 입학했지만 1941년에 공포된 국민학교령에 의해 국민학생이 되었습니다. 국민이란 말도 일본인들이 근대에 만든 말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봉쇄된 서당 교육 대신 학교 교육으로 체제가 변했습니다. 국가란 황국으로, 아동은 소국민으로 교육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황국신민을 단련시키는 연성도장이 된 셈입니다. 나치의 커리큘럼과 명칭을 따라 한 교과목으로 배우며 당시 우리는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쓰게 됩니다. 광복 후 국민학교란 말을 버려야 했음에도 1996년에 이르러서야 초등학교로 바뀌게 됩니다. 이때도 왜 바뀌어야 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학교 공부란 말의 어원과 의미를 짚어주면서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지,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진짜 공부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이어령 선생님이 생각하는 배움이란 멘토와 멘티로 서로를 자극하며 함께 발전하는 관계라는 걸 짚어줍니다. 하지만 일제 36년을 거치며 우리의 교육은 교육 주체가 배우는 쪽에서 가르치는 쪽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제 국어는 일본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딱지를 열 장씩 주며 한국말을 쓰면 딱지를 빼앗는 딱지 전쟁을 시킵니다. 야! 대신 오이! 해야 맞는 말이 된 겁니다. 일본말이 서툰 아이들은 아예 입을 다물게 됩니다. 언어를 지배하여 사고방식까지 조작할 수 있다는 속셈으로 일제는 말과 글을 뺏었습니다. 교육만능론적 사고입니다. 


일본 군국주의는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끼칩니다. 일본식 교복을 입고 책보 대신 책가방을 들면서 보자기 문화가 사라지게 됩니다. 보자기형 짚신문화도 사라집니다. 싸기 문화가 넣기 문화로 변질되어간 건 모든 사고체계에서 일어납니다. 


일제 강점기 한국인상을 분석하는 이어령 저자는 "역사는 블랙박스의 블랙박스다."라고 말합니다. 추리소설의 법칙처럼 죽음으로 덕을 보는 자가 곧 범인인 겁니다. 친일의 허구를 깨뜨리려면 일본 역사의 블랙박스를 깰 수 있는 추리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유년의 경험을 통해 식민지 아이들의 의식을 지배한 군국주의의 작동과 상징을 해부하는 이어령 선생님. 몸뻬 바지가 대동아공영권 이념을 주장한 일본의 생존관을 반영한 물건이라는 것도 이제서야 알게 됩니다. 


소년 이어령의 이야기는 세상을 뜬 할머니, 할아버지 대신 지금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값진 이야기들이 가득한 <너 어디로 가니>.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하나씩 끄집어낼수록 우리의 정체성도 선명해진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어령 저자의 유작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에 이어 2부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로 더 이어질 예정이라니 여전히 이야기 보따리가 남아있다는 기대감에 즐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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