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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스테디셀러 에세이 허지웅의 <살고 싶다는 농담>. 2018년 악성림프종으로 항암 치료를 받은 후 써 내려간 25편의 글이 담겼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터닝포인트를 기점으로 인생관의 변화를 경험하는 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허지웅 저자에게는 하루하루 무너지길 반복하던 나날들이 항암 후유증 때문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정신을 뒤흔드는 고통을 겪는 이 시대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공감의 정서를 그의 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위태로웠던 시기를 결국 살아낸 생존자의 목소리이기도 한 <살고 싶다는 농담>. 자신처럼 망했는데,라고 생각하며 혼자 있을 이들에게 전하는 허지웅의 응원입니다.
처음 호기롭게 항암 치료를 이겨내겠다 했을 땐 죽음이라는 결론에만 몰두해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습니다. 털 모자를 선물로 준 이름 모를 간호사의 마음을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었습니다. 죽음에만 몰두했을 땐 다른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더라는 겁니다.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거창한 결론이 삶을 망친다면 사소한 결심들은 동기가 되더라고 말입니다. 재발의 두려움을 안고 살면서도 이제는 많은 결심을 하겠다는 그의 다짐처럼 우리가 고통에 매몰되어 있을 때 그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를 그의 성찰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 살고 싶다는 농담
고아처럼 혼자 힘으로 대학 생활을 힘겹게 마치고 사회에 나가기까지 엄청난 가난의 굴레에 엮여있었던 그는 그 시절을 보낸 자신을 내심 자랑스러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는 그의 목소리에선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항암 치료를 받을 때조차 그는 혼자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해낸다는 것과 의존적이지 않다는 것의 차이를 이제는 깨닫습니다. 혼자 있는 게 편한 독립적인 성향에 자부심을 가졌건만, 주변에 마음을 나눌 가족과 이웃의 존재는 그저 단순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힘든 시기를 거쳐갈 때 나를 타인에게서 스스로 소외시키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불행의 인과관계에 대한 그의 성찰도 인상 깊었습니다. 인과관계를 규명해 보겠다는 집착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를 알려줍니다.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하고 반추해서 기어이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내더라고 합니다. 벌어질 일은 결국 벌어질 테고, 원인을 찾는답시고 무언가를 탓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하자는 목소리가 큰 울림을 줍니다.
어느 순간 문제를 파악하거나 해결하는 일에 관해 이미 희망을 놓아버린 이들에게 전하는 허지웅의 위로와 응원 <살고 싶다는 농담>. 미드 <굿 와이프>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일곱 가지 장면으로 요약한 것처럼 내 인생의 일곱 가지 장면을 꼽아보자고 합니다. 어떤 장면들이 모여지든 누구나 마지막 장면은 자신의 죽음입니다. 일곱 가지 장면을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저 역시 어떤 마음이 들지 궁금해집니다. 망했다는 기분이 들 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을 때 읽어야 할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