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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사 -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후루타 모토오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8월
평점 :
동남아시아는 여행지로 몇몇 도시만 알뿐 역사를 제대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인의 해외여행지 1순위 지역이지만 역사적 배경을 알고 떠나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수능 사탐 선택과목 중 하나인 동아시아사에서도 킬러문제로 자주 등장하는 동남아시아사.
세계사와 연계해 다른 지역과의 교류사 관점으로 동남아시아 역사를 살펴보는 AK 이와나미 시리즈 <동남아시아사>로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보려 합니다.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브루나이, 필리핀까지 동남아시아 11개국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통사로 접근하는 책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의 국가로 성립되기까지 동남아시아 지역의 역사는 그야말로 낯섭니다. 여행 가이드북에 요약된 역사로 그나마 이름은 들어본 OO 왕조, 식민시대와 독립, 전쟁 등 굵직한 것만 대략 아는 수준이거든요. 옛 지명이 나올 때마다 어찌나 낯선지 그동안 얼마나 유럽사 위주로만 책을 읽었는지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동남아시아 역사는 비중이 높지 않았으니 교양서적으로 이렇게 접하지 않는 이상 가까워질 기회가 없습니다.
자연 지리적으로 대륙부와 도서부로 나뉘는 동남아시아. 벼농사를 바탕으로 한 농업국가와 동서양 교역에 기반을 둔 교역국가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어 우리나라와 닮은 꼴이 많아 동질감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동남아시아사>에서는 동남아 초기 국가 형성과 발전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부터 신석기 문화 출현 시기부터 살펴봅니다. 거대한 건축물이 출현했던 앙코르 왕조의 번영 배경도 이해할 수 있고, 유라시아 대륙에 출현한 몽골제국에 의해 동서교역이 발달하며 점차 발전하는 동남아시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앙코르 제국의 쇠퇴, 이슬람의 확대, 세계적인 경기 확장의 시대를 거치며 외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 역사적 배경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오스만 왕조가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집트부터 소아시아 지역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하자, 이 땅을 경유해서 동남아 산물을 수입하기 어려워진 유럽. 결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 세력들이 직접 항로를 찾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대항해 시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동남아시아로 진출한 최초의 세력은 포르투갈이었습니다. 동서 교역의 요충지 멀라까를 점령하고 기존 동방 무역망을 붕괴시키게 되니, 이 또한 세계사적 변화를 초래하게 됩니다.
교역의 시대에서 육지의 시대로 접어들며 동남아시아는 근세를 맞이합니다. 유럽은 유럽 나름대로 한창 바쁜 시기다 보니 미얀마, 타이, 베트남 판도의 기초가 되는 왕조들이 이때 성립되고 근대로 이어지는 바탕이 됩니다. 하지만 이내 유럽 세력이 동남아시아 영역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대부분 지역이 구미 열강의 식민 통치하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나라처럼 외부로부터의 근대를 맞이하며 제국주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식민지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프랑스는 베트남을 노렸는데 여행지로 인기 많은 다낭이 그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베트남 북부 지역까지 군대가 출병하는 사태에 대항하여 중국 청조는 베트남 파병을 단행했으니 이것이 바로 청불전쟁입니다. 프랑스는 70년간 베트남을 점령했는데, 예쁜 프랑스풍 도시 흔적을 간직한 베트남 곳곳이 이제는 새롭게 보일 것 같아요.
대한민국 독립사처럼 동남아시아도 민족주의가 형성되면서 저마다 독립의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열강들의 지배 체제 속에서 근대 교육을 받은 식민지 엘리트들이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깨어있는 지식인들의 역할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사적 전환은 식민지주의의 붕괴와 함께 찾아옵니다. 동서 진영 간의 냉전 구조 속에서 새판이 짜이게 된 겁니다. 냉전은 동남아시아를 분열 상태로 내몰았고, 냉전 시대 최대의 국지전이라 부르는 베트남전이 발발합니다. 그동안 미국의 시각으로만 바라봤던 베트남전이었지만 이 책을 통해 중립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부침이 많았지만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인 ASEAN 아세안이 단순히 반공 군사동맹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10개국을 포괄하는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이해하며 동남아의 자립 행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찍이 빠른 성장세를 보인 동북아 일본, 한국보다 앞서가는 분야가 있을 만큼 개발도상국, 원조 공여국의 관계를 넘어선 동남아시아. 베트남은 2045년까지 개발도상국 이미지를 벗어나 고소득 선진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동서 세계의 교차로가 되어왔던 동남아시아는 앞으로 그 중요성이 더 부각될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풍부한 각주와 해설로 가득한 <동남아시아사> 책 덕분에 그동안 등한시했던 동남아시아 통사를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