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
민이안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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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제1회 SF소설 공모전 '상상 현실이 되다' 대상작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 민이안 작가의 성공적인 등단작입니다. '사람은 성장 시기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앞구르기, 뒷구르기, 옆돌기를 매일 하는 시기. 공룡의 이름과 특성을 읊고 다니는 시기. 별의 형태와 은하들의 거리를 외우고 다니는 시기. 나물 반찬을 싫어하는 시기. (중략) 따뜻한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받는 시기. 상상을 글자로 옮겨보는 시기. 마침 상상을 글자로 옮겨보는 시기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라는 프로필 문구에서부터 느낌이 훅 오더라고요.


침대에서 눈을 뜬 게 아니라 정체 모를 새하얀 마네킹 더미에서 눈을 뜬 '나'. 마네킹이라 생각했던 것은 버려진 안드로이드들입니다. 이곳은 폐기된 안드로이드의 파츠를 분리해 새로운 몸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안드로이드 업사이클 센터입니다. 


나는 왜 기억을 잃은 채 이곳에 있는 걸까요. 다행히 잠시 의식을 차린 사이 구조되지만 이내 기절해버린 사이 웬 놈이 피부가죽을 벗겨내고 망치로 두개골을 두드리는 절체절명의 순간 깨어납니다. 으아아악!!


그런데 이상하게 통증은 없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내 머리를 열어본 안드로이드는 몇몇 메모리 데이터가 비어 있다느니 제조 번호가 어떻다느니 같은 말을 해댑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안드로이드인가 봅니다. 그것도 구형 안드로이드들이 선망하는 최신형이라고 합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나는 왜 이 상황에 이르게 된 걸까요.


이곳은 버려진 안드로이드 중 자아가 남은 안드로이드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인간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습니다. 나는 내 머릿속을 본 안드로이드 '달'에게 의지해 함께 다니기로 합니다. 달은 연락이 한참 전에 끊긴 주인이 내렸던 명령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주인과 연락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진 채 임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달의 여정에 함께하는 이름 없는 나에게 달은 '풀벌레'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밤마다 시끄럽게 질문을 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구형 바디의 안드로이드들은 부품을 구하기도 힘들어 이 세계에서도 깡패 로봇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인간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주인과 연락이 끊겨 무기한 대기하는 안드로이드는 오히려 온전한 죽음을 바랄 지경에 이릅니다. '나' 역시 구형 안드로이드들이 인간인가 착각할 정도로 인간다움의 면모를 보여주다 보니, 스스로도 정체성 혼란을 겪습니다.


명령어 수행을 완료했거나 수행 불가능한 상태로 무기한 대기 중인, 삶의 목표가 사라진 안드로이드 세계. 인간과 닮게 만드느라 가짜 고통까지도 겪도록 만든 안드로이드의 이면을 뜻밖에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인간의 허무감, 우울감을 고스란히 경험하는 기계 역시 자기 파괴적 최후로 나아가는 현장을 목격할 땐 기분이 묘해지더라고요. '나'는 왜 과거의 기억을 전부 날려먹었는지, 달의 숨겨진 명령어에 감춰진 비밀 등 이들의 여정은 성장 드라마의 한 편을 보는듯합니다.


한국 SF소설계의 샛별 탄생입니다. 차기작을 기대하게 됩니다. 짜임새 있는 구조와 결말을 완성하기 위해 곳곳에 설치된 암시, 아름다운 언어가 어우러져 기성 작품에 전혀 뒤지지 않는 SF소설을 맛봤습니다. 상상을 글자로 옮겨보는 시기라는 그의 성장 시기가 오래 이어지길 바랍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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