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떻게 살래 -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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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의 지적 편력이 담긴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세 번째 꼬부랑 고갯길은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은퇴 후 마지막 작품인 '한국인 이야기'를 정리하기 좋은 날. 그날은 이상하게 호주머니 속 안드로이드가 떼를 쓰는 것처럼 울리더라는 겁니다. 신문사 기자에게 걸려온 전화였고, 첫 말이 알파고 포비아였습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에서 인류가 완패한 날, 뭔가 한 마디 코멘트 해달라는 청탁 전화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구글 안드로이드 로그가 다른 모드로 보입니다. 초록색 로봇 다리가 콘센트 플러그처럼 보이니 아뿔싸, 은퇴할 작정이었으면 코드부터 뽑았어야 했는데 하며 투덜댑니다. 알파고는 뜬금없이 나타나지 않았고, 우리는 매일 안드로이드와 놀고 있지만 그럼에도 정체를 몰랐을 뿐입니다. 알파고를 알기 전부터 휴대폰 속 인공지능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알파고 포비아가 우리나라를 뒤덮었을까요. 결국 여정에 없던 한국인 이야기의 다른 한편을 쓰게 되었고 <너 어떻게 살래>에서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해법을 풀어나갑니다.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현상인 네오포비아와 도전하려고 하는 네오필리아의 갈림길에 선 우리나라. IT 하면 한국을 떠올리지만 정작 AI 극장엔 느지막이 관객으로 들어가는 형상입니다. 알파고 포비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이어령 교수는 알파고의 정체를 한번 제대로 파헤쳐 봅니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는 말은 하면서 알파고가 누구 자식인지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알파고 출생의 비밀을 들려줍니다.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어 어렵지 않고 흥미진진합니다. 인공지능 개발사에 등장한 인물들, 알파고 로고의 태극무늬가 가진 의미,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 장면을 두고 숨은그림찾기 하듯 이야기를 건져올립니다.





구글은 애초에 검색 회사가 아니라 AI 회사이며, 구글의 경쟁자는 네이버가 아니라 의식주 관련 기업에 모두 걸치고 있음을 짚어주기도 합니다. 바야흐로 디지털 정보 산업이 인공지능의 발흥과 함께 아날로그의 브릭 산업 분야로 팔을 뻗치는 경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를 설명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왜 한국에는 구글 같은 회사가 없는지, 왜 한국에는 캐나다 마피아 3인방이라 불리는 딥러닝 연구자들이 없는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물론 개인 정보, 검열 등 넘어야 할 크고 작은 고개들이 있습니다. 기계론적 세계관이 놓친 생명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늦게 관객이 된 우리나라의 역할을 짚어줍니다. 이제부터는 이어령 교수가 오래전 <디지로그>라는 책으로도 내놓으며 소개한 디지로그 생명자본에 관한 이야기가 핵심이 됩니다.


이어령 교수는 인공지능에 한국의 인仁 정신이 융합될 수 있다면 인간과 공존이 가능한 로봇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배려하고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은 인간의 기본이자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너 어떻게 살래>에서 생명자본주의와 인공지능이 디지로그라는 판에서 어떻게 합쳐질 수 있는지 방대한 지적 탐험의 여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AI 포비아를 AI 필리아로 바꾸는 데 필요한 인仁이라는 아날로그 자산을 가진 한국인. 충격을 먹고 사는 민족인 한국인들에게 AI 포비아를 적절한 기회로 전환하게끔 접근하는 방식조차 이어령 교수다운 멋짐이 담겨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AI가 디폴트인 우리 아이들 세대에게 이렇게 책으로라도 이어령 교수의 지적 자산을 전달해 줄 수 있어 감사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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