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친절한 포르투갈 순례길 안내서
김선희 지음 / 까미노랩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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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생 장 피드포트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프랑스 길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순례길이 이 외에도 많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프랑스 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길이 바로 포르투갈 길입니다. 전체 순례자 중 약 20%에 해당하는 이들이 포르투갈 까미노 (한국어 길 = 스페인어 까미노 = 포르투갈어 까미뇨) 루트를 선택합니다.


국내 첫 포르투갈 까미노 가이드북 <아주 친절한 포르투갈 순례길 안내서>에서는 리스보아에서부터 산티아고를 잇는 약 660km에 이르는 센트럴 루트를 중심으로 포르투갈 내 몇 가지 다양한 길을 안내합니다. 잡지기자 출신 김선희 저자는 2015년 프랑스 길에 이어 2019년 포르투갈 길을 걷게 됩니다. 프랑스 길은 스페인 북쪽 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코스라면, 포르투갈 길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루트입니다.


정보가 많은 프랑스 길에 비해 자료가 충분치 않은 포르투갈 길을 걸으며 고생한 저자가 29일간의 여정을 꼼꼼하게 기록해 나온 책이 <아주 친절한 포르투갈 순례길 안내서>입니다. 순례길의 매력에 푹 빠져 다시 한번 걸어보고 싶은 순례자라면 이번엔 든든한 가이드북도 있으니 포르투갈 길을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요.


매일 걸은 구간의 핵심 정보와 길 난이도, 그 구간과 어울리는 노래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간별 거리만큼이나 도움 된 건 발걸음 수를 표기해둔 부분이었어요. 평소 걸음수 측정 앱을 사용하고 있어 만보의 기준이 있다 보니 더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책 자체는 텍스트 위주로 진행됩니다. 대신 사진과 영상물을 QR 코드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읽는 내내 포르투갈 까미노를 함께 걷는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에세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포르투갈 순례길 안내서입니다. 걷고 있는 길은 어떤 분위기인지, 누구와 걷고 있는지, 어디에서 먹고 자는지 그 모든 선택과 과정, 결과가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집니다. 그 속에서 포르투갈의 역사와 문화, 순례길 전설이 자연스럽게 섞입니다.


세계적인 가톨릭 성지가 포르투갈에도 있습니다. 파티마 병원 때문에 이름은 알고 있던 그 파티마가 포르투갈의 국가적 성지더라고요. 파티마 성지 순례에 나선 포르투갈 사람들 그룹에 섞여 함께 걸으며 챙김을 받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던 초반 5일간의 여정. 원래 예정된 센트럴 루트에서 벗어나는 길이었지만, 일정상 성모 발현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배낭은 지원 차량에 싣고 몸만 가뿐히 걷는 그룹에 섞여 걸으며 포르투갈의 음식, 지리, 자연, 식물 등 풍성한 이야기에 흠뻑 빠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일행과 떨어지게 되는데... 저자가 리스보아 로컬 순례자 33명을 단체 멘붕에 빠지게 만든 에피소드는 포복절도하게 만듭니다. 저자의 영상을 통해 촛불 퍼레이드 장면을 감상해 보니 파티마행의 가치가 전달되더라고요.


이후 센트럴 루트로 합류하는 과정에서도 방향을 잘못 잡아 이상한 곳으로 가기도 했지만 그만큼 길 위에서 마주하는 온갖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혼자 걷고 싶어 떠났으면서도 친구를 만들고, 그 친구들을 찾아 길을 나서는 아이러니한 순례길. 엉뚱하게 툭툭 마주치게 되는 사람도 있고, 결국 만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같은 구간을 비슷한 일정으로 걷더라도 만남과 이별은 예측하기 힘듭니다. '길 위에서의 우연과 불확실성'이 바로 까미노를 인생에 비유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순례길을 걷는다고 해서 고행의 길만을 택하지는 않습니다. 걷기에 편하지 않은 길은 버스를 타고 건너뛰기도 하거나, 알베르게 대신 작은 호텔에서 여행자처럼 편안히 자기도 합니다. 컨디션에 따라 융통성 있게 거리를 설정해 걷고, 걷다가 만난 마을에 충동적으로 머물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가이드북을 100% 충실하게 따라 걸어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산티아고를 향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이드북에도 없는 신축 알베르게를 만나는 행운을 갖기도 합니다. 두 번째 산티아고행에서 김선희 저자는 그만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까미노답지 않은 곳은 죄책감 없이 건너뛰고, 주저 없이 쉬며 자유롭게 걷고 어떨 땐 그 자유마저도 과감히 버리고 상황에 순응하며 룰을 깰 수 있다는 규칙을요.


"지도를 덮으면 사람들이 설정해둔 특정 루트를 벗어날 가능성은 물론 커진다. 하지만 자신만의, 어쩌면 진짜 여행이 기다린다." - 책 속에서 


29일 만에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에 입성한 그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한번 포르투갈로 떠납니다. 포르투로 내려가서 이번엔 서쪽 해안 바닷길 코스타 루트를 걷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전설의 배경이 된 파드론을 거치며 또 한 번의 순례길을 클리어합니다. 


대개는 혼자 걷지만 심정적으로 피폐해질 즈음엔 역시 사람이 약입니다. 혼자 시작해 혼자 걷는다고 생각해도 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의 인연은 포르투갈 순례길을 걸은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길에 비하면 인프라가 취약하지만, 스페인보다 물가가 저렴한 포르투갈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아직 우리에겐 낯선 포르투갈 길의 이모저모를 소개한 <아주 친절한 포르투갈 순례길 안내서>. 걷기 여행을 좋아하는 여행자, 조금은 색다른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성맞춤 가이드북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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