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가꾸고 있습니다 - 동물들이 찾아오고 이야기가 샘솟는 생태다양성 가득한 정원 탄생기
시몽 위로 지음, 한지우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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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 소멸, 조류 개체수 급감, 동식물 멸종, 곤충의 종말... 기후변화로 생태다양성이 감소하는 오늘날, 힘없는 개인이지만 충분히 생태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주는 <정원을 가꾸고 있습니다>. 한 땀 한 땀 가꾼 정원을 통해 자연에 흠뻑 적셔지는 경험, 몰입, 만남, 발견, 경이로움을 맛본 시몽 위로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2020년 블루아 페스티벌 상트르발 드 루아르 상을 수상한 이 책은 원제가 <L'OASIS (오아시스)>입니다. 삭막해진 지구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는 정원 가꾸기의 여정을 수채화풍 그림으로 세밀하거나, 따스하거나, 유머스럽게 다채로운 분위기로 보여주는 그래픽노블입니다.


엉망인 상태이지만 작지 않은 정원이 있었기에 충동적으로 계약한 집. 시골 초입에 위치한 마을로 이사한 그는 아무런 준비 없는 가드닝 초보자였습니다. 하지만 정원을 어떻게 가꿔야 할지 확고한 신념은 있었습니다. 정형화된 정원 대신 사람의 인위적인 손길을 최소화한 자연의 멋을 고스란히 살리는 정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흉측하고 메마른 나무와 화단이 조금 있는 수준의 휑한 정원. 키 낮은 나무를 네모반듯하게 잘라 담장 역할을 해둔 상태마저도 끔찍해했던 기존의 정원이 어떻게 변신할지 기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엔 500제곱 미터 (약 150평)의 정원으로 시작했다가 옆집의 이사로 1000제곱 미터까지 두 배로 확장된 정원. 물을 담아 수생식물을 기른다며 욕조를 정원에 내놓고 소박한 연못으로 쓰다가 나중엔 아예 연못 건설 작업에 이를 정도로 정원 가꾸기에 진심이었던 저자입니다. <정원을 가꾸고 있습니다>에서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원을 가꾼 에피소드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다양한 동물이 찾아옵니다. 해충이라 불리지 않는데도 인간의 입장에서 껄끄러운 것들도 수두룩하고, 병충해를 입는 식물도 생깁니다. 하지만 화학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그는 석회보르도액을 살짝 뿌리는 등 친환경 요법으로만 해결합니다. 인간에 의해서만 아니라면, 사실 자연은 생각했던 것보다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실감합니다.


물론 추방하는 동물은 있긴 합니다. 워낙 왕성한 개체 수를 자랑하는 달팽이를 막아줄 지빠귀가 부족하고, 고슴도치도 드물기 때문에 달팽이는 다른 곳으로 옮겨줍니다. 달팽이 약을 뿌리게 되면 그 달팽이를 먹은 새도 죽는다는 연쇄 피해를 잊지 않습니다. 말벌은 괜찮지만 말벌 집도 추방합니다. 독뱀이 아니라면 뱀이 찾아오는 것도 반깁니다.


포도 몇 알 먹으러 오는 말벌 정도는 신경도 안 씁니다. 새 종류도 다양해지자 그런 새 한 마리를 가로채가는 매도 발견합니다. 박하에는 박하잎벌레가, 감자에는 콜로라도감자잎벌레가 정확하게 찾아오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하면서 이 동물들이 이곳에 함께 살기로 결정한 것에 방해꾼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황송한 손님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식물이 다양해지고 많아질수록 생태계 다양성이 더해지는 것에 감사해합니다. 개방된 정원이다 보니 동네 고양이들도 자주 찾아옵니다. 새, 도마뱀, 곤충 등을 사냥하는 실력이 대단해서 살짝 골칫거리이기도 하지만요.


"생명의 원리는 간단하다. 기본적인 틀만 제공해도 충분히 생명을 되살릴 수 있다." - 책 속에서


단조롭지 않은 정원이기에 각각의 생태 환경이 자기에게 맞는 생물들을 끌어들이는 놀라운 경험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살아 숨 쉬는 정원이란 이런 거라는 걸 제대로 보여줍니다. 믿기지 않은 생명도 만납니다. 대벌레, 반딧불이를 내 정원에서 만난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의 정원 방명록은 해가 갈수록 가득 채워지고 있습니다. 연못이 있으면 모기 서식지가 될 거라 다들 말렸지만, 그의 정원엔 포식자도 무척 많습니다. 경이로운 스며듦의 공간이라고 표현할 만큼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정원입니다. 그리고 정원사는 그저 관찰자이자 행동가로서의 역할만 하면 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생기 없던 땅이 드라마틱 하게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 <정원을 가꾸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10년 동안 매 순간 기적을 맞이하는 삶이라니, 뭉클한 감동을 안겨줍니다. 질서 정연하고 깔끔하고 효율성이란 이름하에 파괴하는 자연이 아니라, 오아시스 같은 살아 숨 쉬는 정원을 통해 생태다양성을 실현하는 값진 여정을 보여준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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