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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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역사를 새로 쓴 옥타비아 버틀러의 1993년 작품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원제 Parable of the Sower)>. 열다섯 살 소녀 로런이 2024년부터 2027년까지 쓴 일기를 통해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여전히 먼 미래로만 대하는 현대인들에게 우리의 앞날을 보여주는 듯한 기분입니다.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사라지고, 이방인을 차단하는 장벽이 세워진 세계. 어른들은 좋았던 옛 시절을 기억하지만,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무질서와 폭력이 난무하고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로 가득한 채 장벽으로 둘러싸인 폐쇄형 주택단지의 세상만 압니다. 바깥세상은 위험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바깥세상의 사람들이 침입해 동네를 위협합니다. 거리엔 시체가 즐비하고 하룻밤 새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목사 아빠와 새엄마 그리고 네 명의 동생들과 함께 사는 열다섯 살 로런은 초공감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자신이 파악하거나 추측한 타인의 감각을 함께 느끼는 겁니다. 내 것이 아닌 슬픔, 진짜가 아닌 슬픔을 잔뜩 빨아들입니다.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의 극심한 고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침입자나 들개를 죽여야만 할 때에도 고스란히 그 고통을 받아들이며 정신을 잃기 일쑤입니다. 그럼에도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내야만 합니다.


총소리를 너무 많이 들은 나머지 소리를 들어도 신경을 안 쓰는 지경에 이를 정도입니다. 너무나도 죽음이 흔한 세상. 하지만 열다섯 살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없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대비, 그 일을 끝까지 견뎌낼 대비, 다 끝난 후에도 계속 살아갈 대비를 하는 똑똑한 로런입니다.


자급자족하는 법을 책을 읽으며 배우고, 바깥세상에서 살아남는 데 유용한 거라면 뭐든 배웁니다. 그 덕분에 살아남을 시간을 벌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현실이 마법처럼 바뀔 거라 기대하는 건 그만하고, 우리가 진짜로 뭔가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의 바탕은 '변화'입니다. 로런에게는 변화가 곧 하느님이자 신앙이 된 겁니다. 지구의 씨앗인 지구종이라는 이름을 붙여 자신만의 신앙을 굳건히 다집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로런이 변화라는 신앙을 만들어 지구종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열다섯 살에 시작했던 일기는 열여덟 살에 이르기까지 이어집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속편 <은총받은 사람의 우화>로 한국어판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로런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에피소드가 더해지는 과정이 시즌제 미드로 만들기 딱 좋은 구성이라고나 할까요. 진행될수록 속도감도 빨라지고 흥미진진해집니다.


침입자들로 인해 불바다가 된 동네를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는 로런. 드디어 바깥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누구도 어떤 것도 감히 거스르지 못하는 힘인 변화를 장착한 로런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의 대비가 인상 깊게 펼쳐집니다.


오늘도 목숨을 지키기 위해 피로와 두려움, 긴장 속에서 살아가며 일자리 하나에 실업자 수천 명이 달려들고 노예보다 더 못한 일회용 인간 취급을 받는 세상에서 로런이 뿌리는 씨앗은 잘 싹 틔울 수 있을까요. 장애를 가진 어린 흑인 여성이라는 소수자 로런의 성장 드라마이자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세상을 극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인간의 어두움을 다룬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너무나도 현실감 있는 이야기여서인지 2020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재조명 받은 소설이라고 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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