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 병이 망칠 수 없는 내 일상의 웃음에 대하여
신채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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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명 중 2명꼴로 진단받는 희귀난치병 타카야수동맥염. 전신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병입니다. 원인도 치료제도 없고 언제 나올지도 모릅니다. 혈관 염증 수치를 낮추는 고용량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다 보니 온갖 부작용에 시달립니다. 이름도 낯선 이 병은 동양인, 여성, 20대 이하 때 진단받는 확률이 높다 보니 그야말로 소수자로서의 삶을 견뎌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삶을 견뎌내고 있는 신채윤 저자는 04년생 고등학생입니다.


희귀난치병을 앓는 학생이라는 지칭만으로 재단한다면 극히 일부만을 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노란색을 좋아하고 따뜻한 곳에 앉거나 누워 있는 걸 좋아고, 책 읽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로맨스나 판타지 웹툰 보는 것을 좋아하는 신채윤도 있습니다.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는 병을 안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마음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학생이 쓴 글이라는 선입견은 일찌감치 떨쳐버려도 됩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저자의 깊은 사색에서 우러나오는 담백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큰 울림을 줄 테니까요.


학교보다 입원이 일상의 중심축이 되고부터 일상의 모든 것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병을 앓는 건 당연히 싫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가득해 시시때때로 신경을 곤두세운 나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혼란스러움을 다독인 건 늘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지내기로 마음먹고부터입니다. 나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뒤따르는 병. 아픈 나도 나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렇게 내가 나인 것을 잊지 않고 사는 마음을 담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2020년 1월부터 현재까지 한겨레21에 "노랑클로버"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으로서의 자아보다 환자로서의 자아가 우선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일들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스테로이드제 부작용으로 항상 얼굴이 부어있으니 새 학기 새 친구들은 얼굴이 붓기 전의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아픈 사람 이미지에 가려서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봐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속에 결국 병이 있다는 사실을 오픈하는데, 걱정했던 것에 비해 친구들의 반응은 평범하고 무난했습니다.


병으로 달라진 일상에 적응해야 하는 고통을 알아주는 친구들의 공감과 배려를 받기도 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오히려 스스로를 환자라는 울타리에 가둬두고 온갖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됩니다. 입시 중심 학교 대신 대안형 혁신학교에 다니고 있기에 경쟁적인 분위기가 그나마 덜어져 학교생활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전 절대 저를 포기 안 해요." - 책 속에서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녀야 하고, 검사 수치에 따라 집중치료를 위한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취업을 해도 '특별한 배려' 하에서만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을 거라는 걱정도 듭니다. 장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다른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거라고 하지만, 그건 할 수 있는 것이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줄도 아는 저자입니다.


병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배제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음에도 절망 언저리로 밀려버리는 일들이 쏟아집니다. 수많은 날들을 괴로워하고 절망하기도 했지만, 병이 망칠 수 없는 것들을 소중하게 지키고 키워나가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신채윤 저자.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에서는 그런 숱한 고민의 순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는지, 희귀난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청소년의 진솔한 용기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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