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 - 물이 평등하다는 착각
맷 데이먼.개리 화이트 지음, 김광수 옮김 / 애플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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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수많은 NGO에서 우물 파기 사업을 했던 걸 기억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무거운 물통을 지고 수 시간을 걷는 아이의 모습을 비춘 이미지와 함께 말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우물들이 2~3년의 수명을 끝으로 방치되었습니다. 고장 나면 부품을 살 수도 고칠 인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과 위생에 대한 시급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런데 할리우드 배우 맷 데이먼과 물 전문가 개리 화이트가 손을 잡았습니다. 안전한 물과 위생 시설을 세상에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구촌 비영리단체 워터닷오알지를 운영하면서 말입니다. <워터 (원제 The Worth of Water)>에서 그들의 물 프로젝트 여정을 보여줍니다.


맷 데이먼은 그저 스타 인지도를 활용한 얼굴마담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활동 이력을 보니 대단한 실행가라는 걸 알게 됩니다. 2006년 어느 날, 록스타 U2의 보노에 이끌려 남아프리카 잠비아 시골에 가게 된 것이 그의 인생의 변환점이 되었습니다.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알게 됩니다. 특히 물과 관련한 충격적인 사실들을 깨닫습니다. 물이 오염되었고, 그런 오염된 물조차 구하기 어렵다는 상황을요.


누군가 물이 있는 곳까지 가서 직접 길어 와야 합니다. 그 누군가는 항상 성인 여자나 소녀입니다. 여자들의 책임인 겁니다. 맷 데이먼은 열네 살 소녀와 동행합니다. 30분을 걸어가 펌프로 우물물을 끌어올리고 18킬로그램이 넘는 물통을 머리에 올리고는 다시 30분을 걸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소녀의 사례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합니다. 우물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에 살았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며 공부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왕복 6시간 걸리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물을 길으러 가는 것이 하루의 전부인 것에 비하면 말이죠. 공부를 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소녀에 비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대다수인 현실입니다.


1980년대 물과 위생 부문에서 시급성을 인지했음에도 변화 없는 상황에 환멸을 느낀 공학도 개리 화이트. 단순 자선활동을 넘어 제대로 된 사회적 기업가 개념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습니다. 물과 위생 관련 NGO들과 현지 단체들의 파트너십이 쓰고 버리는 식의 관계인 당시 분위기를 회상합니다. 그는 지역사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사업을 고심합니다.


하지만 이 일에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기부 모금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문제라는 걸 경험합니다. 그러면서도 엔지니어 사고방식을 활용해 돌파구를 찾아내려고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소액금융을 활용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며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누스 교수와 <팩트풀니스>를 쓴 한스 로슬링으로부터 영감을 받습니다. 그는 물과 위생 문제 해결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꿉니다. 화장실이 집에 없는 노인이 결국 비싼 금리의 대출을 받아 집에 화장실을 설치하고,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빈민들이 소액의 공정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맷 데이먼과 개리 화이트는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체를 설립하고 운영해나가면서 비효율적인 부분을 인지할 때마다 더 나은 방법을 찾아 헤맵니다. 그리고 둘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지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가 됩니다. 빈민들을 자선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문제, 그들의 다양성과 역량을 보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합니다. <팩트풀니스>의 한스 로슬링에 의하면 지난 20년 동안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인구 비율이 얼마나 변했을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2배로 늘어났거나 그대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가난의 고리를 끊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늘었다는 겁니다. 그저 무기력한 존재로만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자신만이 도덕적이고 현실적인 지원 방법임을 내세워 우물 파기만 한다면, 문제는 오히려 고착화된다는 것에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그들은 물 부족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냅니다. 해결책의 근원을 재정 문제에서 찾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워터닷오알지입니다.


많은 가구들이 소액대출을 받아 물과 위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수도 시설이 갖춰지기 전에는 돈이 얼마가 들든 그 물을 사야만 했습니다. 집안에 수도꼭지를 설치하고 대출금을 상환하며 수도 요금을 내는 것이 유조차로 실려오던 더러운 물을 비싸게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물을 구하러 다녀야 하는 짐에서 해방되었을 때 잠재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극빈층은 빌린 돈을 절대 갚지 않는다는 편견은 부서졌습니다.


워터닷오알지는 이제는 불평등과 기후 변화에 초점을 맞추며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깨끗한 물이 부족한 현실은 극단적인 불평등 사례이며, 물 문제 또한 기후 위기의 핵심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물 접근성을 확대해야 미래까지도 도움 된다고 합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더욱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4인 가정이 매일 손만 씻는데 75리터 이상의 물이 필요하지만 그들은 손조차 씻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안전과 물과 위생에 달렸다는 걸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더욱 절감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양치하고, 양변기 물을 내리고, 커피 물을 내리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죽을 것만 같은 갈증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무의식적으로만 이용하기에 그 시설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물 부족은 그저 비용 문제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 물 부족이 치명적이 된다는 걸 머릿속에 각인이 되지 않고 있기에 <워터>의 이야기가 더욱 의미 있습니다. 물은 생명이라는 추상적이고 대의적인 말을 넘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며 물과 위생 문제가 왜 중요한지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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