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병 - 공감 중독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나가이 요스케 지음, 박재현 옮김 / 마인드빌딩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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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함의 대명사 ‘공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연대를 만들어주는 공감은 아름다운 개념입니다. 하지만 냉혹한 이면이 도사리고 있다는데?!


NPO 법인 억셉트 인터내셔널 대표이자 유엔 인간 주거 계획 CVE센터의 멘토, 포브스 30세 이하 유망주 30인에 선정된 나가이 요스케 저자는 소말리아 등 분쟁지에서 테러와 분쟁 해결을 돕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공감의 부작용을 비일비재 겪는다고 합니다. <공감병>은 공감을 나쁘게 매도하지 않습니다. 올바르게 이용하면 더 나은 차원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지만, 공감 중독 및 과잉의 문제는 오히려 어마어마한 부작용을 낳기에 이 문제를 짚어주고 있습니다.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린 남루한 차림의 60대 남성 노숙자와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누더기 차림의 10세 여아가 있습니다. 두 사람 중 당신은 어느 쪽에 공감하는지요. 둘 다 똑같은 인간으로서 같은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성에겐 자업자득이라며 공감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나가이 요스케 저자는 테러리스트 갱생 지원 및 테러조직과의 교섭을 하며 이와 비슷한 상황을 접했습니다. 고향 마을 친구들과 강제적으로 조직에 가입했다 갱생 시설에 들어온 청년과 돈이 없는 백수여서 스스로 조직에 가입했다가 갱생 시설에 들어온 청년에게 대하는 사람들의 공감력은 다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공감할까요. 자신과 공통항을 갖고 있거나 비슷한 경험을 한 대상, 혹은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대상에 좀 더 쉽게 공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공감하는 만큼 그 대상에게 정당성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개개인이 가진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때 공감은 특정인에게만 해당하는 지향성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공감은 내 편의 사람에게 작동하는 거죠. 명백히 공감이 필요한 경우에도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하게 되는 겁니다.


"바야흐로 공감은 차별주의자다." - 책 속에서


공감의 메커니즘은 타자의 배경과 상황을 파악해 심리 상태를 추론하여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과 무의식에서 일시적, 충동적, 감성적으로 공유하고 동기화하는 정동적 공감으로 구분됩니다. 이 둘은 단독 또는 함께 작용합니다.


개인의 공감이 타자의 의도대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자극적인 문구나 과장된 주장으로 공감 포인트를 짚어주는 마케팅에 쓰이는 건 애교 수준입니다. 분쟁, 학살처럼 심각한 폭력이 벌어지는 곳에서도 교묘하게 사용됩니다. 민족, 이념 등 대립을 이유로 특정 집단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여 절멸시키려는 제노사이드처럼 말입니다.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르완다에서는 루치족은 바퀴벌레니 죽여라고 라디오 방송으로 선동해 후투족을 집결한 사례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더 많은 공감을 얻기 위한 경쟁 때문에 공감의 획득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가고 있는 공감 과잉의 사회. 간단히 선동당하는 사람들과 해결되지 못한 채 나빠진 상황만 남는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이렇듯 공감은 지나치면 중독 문제를 일으킵니다. 소셜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며 자기 승인 욕구의 과도한 비대화는 타자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감을 잃어가고, 과도한 공감에 의한 폭주로 공감 피로, 공감 탈진 문제를 낳습니다. 내집단이 외집단에 대한 증오, 혐오를 표출하며 공감이 분노와 증오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공감이 사회와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열쇠이지만, 분쟁 및 대립 같은 것을 불러오는 원인도 된다는 걸 보여주는 <공감병>. 투항해온 사람의 사면 및 사회 복귀를 위한 갱생 지원을 하는 저자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마주하며 살고 있습니다. NPO, NGO 활동을 지원하는 이들 역시 편견이 많다고 합니다. 동남아 지역을 선호하고 어린아이, 여성, 난민 지원 업무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테러리스트의 자발적 투항 독려 및 갱생 업무는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공감할 수 없고 공감하기 어려운 사람에겐 공감을 대신할 게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권리와 이성을 장착한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KuToo 운동을 전개하며 BBC ‘세계의 영향력 있는 100인의 여성’에 선정된 배우 이사카와 유미와의 특별대담과 공감하지 않을 자유 및 윤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일본의 지성 우치다 다쓰루와의 특별대담도 실려 있습니다. 뜨겁게 흥분하기보다는 흑백 논리를 경계하며 타자를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에 대해 짚어줍니다. 공감의 장점을 잘 사용하면서 동시에 이성도 작동시켜 고삐를 잡는다면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가능성이 생길 거라는 나가이 요스케 저자의 <공감병>. 공감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슨 일이든 균형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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