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중력에 맞서 - 과학이 내게 알려준 삶의 가치에 대하여
정인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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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저술가 정인경 박사와 함께 과학책 읽기 <내 생의 중력에 맞서>. SF 소설 같은 제목에 눈길이 갔습니다. 일반 대중에게는 어렵게 느껴지는 과학을 우리 삶의 가치와 연결해 과학과 인문학의 교집합 영역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인간은 왜 행복을 추구하는지, 사랑과 분노 같은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지, MBTI 성격테스트에 왜 끌리는지,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등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주제를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는 책 70여 권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물리적 세계에서 중력의 지배를 받고 살지만, 중력을 이해하고 나서 우주로 가는 문을 열었습니다. 죽음, 질병, 노화, 망각, 사랑, 이별처럼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누구나 마주하는 인간. 정인경 저자는 인간이 통과할 생로병사의 관문이 중력과도 같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지배하는 운명의 힘이지만, 알면 알수록 성장할 수 있듯 나를 이해하는 데 과학이 알려주는 것들을 <내 생의 중력에 맞서>에서 들려줍니다. 새로운 앎을 통해 자기 변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과학과 만날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첫 번째로 소개하는 책은 생물학자 빌 설리번의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희망 대신 될 수 없다며 동심 파괴한 이 책은 인간적 한계와 생물학적 불평등에 대해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약점투성이 인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계와 불평등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걸 인정하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비로소 보이게 됩니다.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됩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을 이해해야 나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을 인정함으로써 문제에 부딪혔을 때 원점에서 맴돌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진정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나다움이라는 건 결국 타인을 인식하기에 생깁니다. 신경과학자 매튜 리버먼의 <사회적 뇌>에서는 사회적 뇌를 통해 공감, 연대, 협동, 소통, 연민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뇌가 사회적이라는 건 거울뉴런으로 설명하는데 타인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는, 즉 공감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과학입니다.


느낌과 감정을 연구한 신경의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스피노자의 뇌>에서는 인문학이 바라보는 감정의 관점과는 다른 과학이 알려주는 감정을 알려주고 있어 흥미진진합니다. 감정 연구 분야에서 호평받은 리사 펠드먼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감정은 촉발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다고 설명하며 기존의 통념을 뒤엎었습니다.


사랑에 대해서도 신비주의를 거둬낸 과학입니다. 신경세포,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등 뇌의 작용으로 사랑을 설명합니다. 사랑이야말로 확증편향에 빠지기 쉬운 감정이라고 합니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샤론 모알렘의 <진화의 선물, 사랑의 작동원리>는 인간의 사랑을 이해하고 싶다면 읽어야 할 책입니다. 이 세상 모든 육아맘이 읽으면 좋겠다 싶은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양육가설>은 전통적인 발달심리학 양육가설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는 책입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놀라운 사실을 들려줍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체계를 완전히 뒤엎습니다. 과학적으로 제3의 성은 무수히 많다는 걸 짚어줍니다.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다면 <내 생의 중력에 맞서>를 꼭 읽어보세요.


삶에서 추구하는 최상의 단계는 '행복'일 겁니다. 1930년대 이후 행복학은 행복 산업으로 소비되었지만, 21세기에 이르러 행복이 무엇인지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면서 전통적인 행복론을 뒤집었습니다. 과학적 행복론의 입문서로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인간의 뇌가 느끼는 감정이라는데, 인간은 행복감을 수단으로 살면서 이로운 행동을 하도록 설계된 셈이죠. 대니얼 길버트의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서는 행복이 배신의 아이콘임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뇌는 현재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현재주의에 갇혀있기에 예측 오류가 생기는 거라고 합니다. 회복탄력성이 있어 다행입니다.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성격이라고 합니다. 대니얼 네틀의 <성격의 탄생>은 뇌 구조와 기능이 만들어낸 차이인 성격은 그저 환경에 잘 맞는 성격이 있을 뿐 성격 간의 우열을 따질 순 없다는 걸 짚어줍니다. 어떤 성격이든 장단점이 공존하는 거죠. MBTI처럼 고대 유물 같은 성격테스트를 왜 우리가 훅 빠져드는지에 관해서는 브라이언 리틀의 <성격이란 무엇인가>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진화의학 관점에서 우리 몸을 탐구한 대니얼 리버먼의 <우리 몸 연대기>는 구석기 시대 몸으로 현대를 살아가기에 광범위한 건강 문제에 노출된 현대인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의료인문학자이며 치과의사인 김준혁의 <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에서는 현대 의학이 건강 문제를 모두 해결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합니다. 운동을 싫어한다면 뇌과학 책을 읽어보세요. 신경과학자 마누엘라 마케도니아의 <유쾌한 운동의 뇌과학>에서 들려주는 운동의 효과가 어떻게 뇌에 작용하는지를 알고 나면 의지가 활활 샘솟을 겁니다.


노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은 최근 몇 년 사이 저도 많이 접했지만 명작을 놓쳤더군요. 노인의학 전문의 루이즈 애런슨의 <나이 듦에 관하여>는 노화를 질병, 치료 대상이 아닌 삶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순간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소아과는 있는데 노인과가 없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인간의 존엄을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으로 설명해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인간다움이라는 것은 추상적으로만 다가왔는데 과학이 설명해 주다니 신기합니다. 조천호의 <파란 하늘 빨간 지구>처럼 기후 위기와 관련해 국내 저자의 목소리로 이미 훌륭한 책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사랑, 행복, 성격, 예술, 건강, 환경, 죽음 등 과학이 인간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들을 알아가는 여정이 흥미진진하게 담긴 <내 생의 중력에 맞서>. 삶에서 마주하는 감정과 문제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펼쳐 보입니다. 인문학에 관심 있지만 과학적 사고로 더 탄탄한 논거를 갖추고 싶은 지적 욕구를 가진 이들이라면 이 책이 마음에 쏙 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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