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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죄송합니다 -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
전안나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사회 복지사이자 독서 관련 책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전안나 저자. 이번에 독서 에세이가 나왔다고 해서 눈여겨봤는데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책 속에 나온 문장인거나 어떤 책과 관련된 키워드라고 생각하며 읽다가 그만 할말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숨기고 싶은 인생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인 커리어 뒤에는 고아, 무적자, 입양아, 아동학대 피해자라는 아픔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전안나 작가의 <1천권 독서법>은 2017년에 읽었는데 대학원 생활까지 하는 워킹맘이 많은 책을 읽으며 정신 건강을 챙기는 모습에 반했었습니다. 당시에도 멘탈이 무너져내린 절박함이 독서를 하게 이끌었다고 고백했는데, 그 절박함의 근원을 <태어나서 죄송합니다>에서 들려주는 셈입니다. 도피성 독서로 끝내지 않고 꾸준히 독서 감옥을 즐기게 되기까지, 지친 마음을 토닥여주고 응원해 준 책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된 아동 학대 생존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드러내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요. 태어나서 죄송하다는 생각을 오랜 세월 가슴에 품고 살았다니 애틋해집니다. 해묵은 상처를 드러내기까지 그를 위로해 준 책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가네코 후미코의 <나는 나> 등이 있었습니다.
전안나 작가는 자신의 이름도, 생일도, 출생지도, 출생신고일도 서류상의 모든 것이 가짜라고 합니다. 입양되어서도 1년 뒤에나 출생신고가 되어 여섯 살까지 무적자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서 그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부잣집 외동딸로 입양되었지만 스물일곱 살에 '탈출'을 했다고 표현합니다. 양어머니로부터 지속적인 폭력을 당했고 양아버지는 너무 착해서 무능해져버린 방관자였습니다.
사회 복지사로 일하다 보니 본인뿐만이 아니라 숱한 가정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안기는 상황을 목도합니다. 최광현의 <가족의 두얼굴>은 가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책이라고 합니다. 피해자와 치료자라는 삶을 살기 위해 그에겐 산소 호흡기 같은 책이 필요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타인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치유합니다.
높은 자존감이란 허상일 뿐이라고 속 시원한 말을 하고 있더라는 허지원의 책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덕분에 자존감에 대한 결핍을 다스리기도 합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에서 오는 감정이 만성적인 우울감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작가였습니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는 책은 제목이 한 방입니다.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필요했던 말이었으니까요. 혹독한 자아비판 대신 자기 합리화를 좀 하면서 살자는 각오를 다지게 됩니다.
한병철의 <피로사회> 책에서는 과연 어떤 키워드로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했는데, 결핍과 소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에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에 강박적으로 반응했다는 전안나 작가는 이제 스스로를 착취해서 살아온, 열정이라고 포장해왔던 과거를 놓기로 합니다. 열정이 아닌 결핍이었고, 보람이 아닌 소진의 결과였을 뿐이라는 걸 책을 통해 배웁니다. 책을 통해 스스로 무시했던 감정들을 오롯이 생각해 봅니다. 사회문제에 노출된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오히려 타인의 고통이 무뎌지고 있었다는 자기반성도 김승섭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으며 하게 됩니다.
독서 에세이이지만 책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기보다는 결정적인 문장에서 건져올린 자신의 삶과의 연결성에 초점 맞춘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위로가 되는 독서, 공감이 되는 독서란 이렇게 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세상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한 번뿐인 인생 인간답게 주도적으로 살아보고 싶어지기까지 그의 인생 이야기가 안겨주는 울림이 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