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달력 웅진 모두의 그림책 44
김선진 지음 / 웅진주니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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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 잠깐 시골을 다녀오거나 그마저도 농사짓는 조부모가 계시지 않는다면 도시에서 자고 나란 아이에게 농사는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거예요. 흔히 농사는 계절을 탄다고 하죠.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농부 부부의 1년을 담은 <농부 달력>에서 만나보세요.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겨울의 시골. "눈 섞인 흙 내음"에 눈을 뜬다는 문장을 읽자마자 어떤 냄새일지 괜히 코를 킁킁거려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두툼한 옷차림으로 단단히 무장한 채 어디론가 길을 나섭니다. 오늘은 읍내에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에요. 복작복작 정이 가득한 말이 오가는 풍경 속에서 할아버지는 제일 고운! 꽃무늬 몸빼 바지를 한 장 삽니다. 그 사이 할머니는 오랜만에 미용실에 가서 "안 풀리게 아주 씨게" 말아달라고 합니다. 


봄이 오려는지 냉이가 올라오기도 하면서 이제 슬슬 봄맞이를 하려나 봅니다. 할아버지가 구입한 고운 몸빼 바지는 할머니의 최애 패션템으로 등장합니다. 흙 속의 벌레가 깨어나는 날씨가 되자 창고를 엽니다. 종자들을 골라 두고 모종판에도 씨앗을 뿌립니다. 봄나물을 뜯어다 저녁거리 마련하며 바지런히 농사일을 준비합니다. 봄나물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요. 냉이, 쑥, 방풍나물, 원추리, 봄동 등 봄에만 잠깐 맛볼 수 있는 나물들입니다. 퇴비를 덮어주었던 땅을 갈아 붉은 흙이 올라오게 하는 밭갈기로 본격적인 올해 농사가 시작됩니다.


삭막했던 밭이 연둣빛으로 감돌더니 점점 초록빛이 짙어집니다. 어린 모종을 심어주고, 다양한 작물들을 가꿉니다. 시금치, 양파, 마늘, 오이, 고추, 부추, 콩, 가지, 참깨, 깻잎, 상추, 당근, 호박, 고구마, 감자, 옥수수, 참외, 수박, 딸기, 토마토 등 노는 밭이 없을 정도입니다. 비가 촉촉이 내린 논에는 어린 모들을 줄 맞춰 세웁니다.


심어주기만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풀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밭고랑과 작물 사이를 부지런히 긁어 줘야 합니다. 작물이 커가는 동안 참새, 개구리, 물방개, 지렁이, 우렁이, 나비, 벌, 새, 개미, 잠자리 등 논밭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들도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장맛비 내리는 날에는 전을 부쳐먹기도 하고, 한여름엔 등목도 하고, 얼음물에 동동 띄운 과일을 먹기도 하면서 더운 여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가을바람이 살랑 불어오는 계절이 찾아옵니다. 해가 지는 게 조금 빨라지면 겨울을 위한 씨를 심어야 합니다. 이슬 내리기 전에 작물들을 거둬들이며 농사 막바지 준비에 돌입합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여 가꾼 작물들은 이쁜 것들을 골라 자식네로 보냅니다. 그리고 다음 해를 위한 종자를 남겨 두며 창고를 정리합니다. 그야말로 허리 펼 날이 없지요. 저는 시댁 어른이 농사일을 하시느라 쌀이나 고구마, 과일 등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제는 남다른 마음으로 받아들 것 같습니다. <농부 달력>을 읽고 나면 감사의 깊이가 확연히 달라지거든요. 농부의 삶이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숨은그림찾기 하듯 페이지마다 강아지 동구를 찾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깨알 글씨가 빼곡하지만 읽는 재미가 정말 좋아요. 운율 좋은 문장 덕분에 리드미컬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심고 가꾸고 거둬들이는 데는 다 각자의 때가 있습니다."라는 문장처럼 자연과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농부의 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여러분의 1년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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