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다케타즈 미노루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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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숲속 수의사의 자연 교감 에세이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홋카이도 동부 고시미즈에 자리한 진료소 수의사 다케타즈 미노루는 산업동물 수의사이지만, 야생동물의 보물창고인 홋카이도 지역인 만큼 상처 입은 야생동물들도 돌보게 됩니다. 40년여에 걸쳐 경험한 홋카이도 동부의 자연에 대한 보고서이자 즐거움에 대한 기록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위트 넘치는 말솜씨가 더해져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일본 안에서도 외국이라 부를 만큼 독특한 자연을 이루고 있는 홋카이도의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북쪽 고장 원주인 아이누족의 이야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오호츠크해에 사는 동물들과 유빙 이야기를 가까운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접할 수 있다니. 아열대 기후의 오키나와에서 일본의 천연기념물 푸르푸르소라게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남북으로 긴 영토여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이 경이롭게 다가옵니다.


숲속 수의사가 사는 마을은 인구 6천 명이 채 안 되는 마을로 차가운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북쪽 땅입니다. 겨울이면 유빙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꺼꺼꺼꺼껑 하며 우는 청자색의 크고 작은 얼음덩어리가 해안을 메운다고 합니다. 오호츠크해에 사는 바다표범에게 유빙은 얼음의 요람이고, 그곳에 새끼를 낳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기압이 북상하는 시기엔 폭풍우에 휩싸여 새끼 바다표범이 표류하기도 합니다. 수의사가 있으니 사람들은 매번 이 집으로 데려옵니다. 그래서 수의사의 한 해는 어김없이 새끼 바다표범 기르기로 시작된다고 투덜댑니다.


얼떨결에 납치를 당해 수의사집에 오는 동물들도 많습니다. 어미가 사람을 피해 잠시 숨은 사이 버려진 새끼라 판단하고 덜컥 데려와버리는 겁니다. 풀베기가 끝난 시기에는 제초기에 다친 어린 눈토끼들이 대거 입원합니다. 다양한 야생동물이 입원해 있으니 동물들의 먹이를 구하는 것도 큰일입니다. 큰고니는 야채 지스러기, 옥수수, 밀을 먹고 너구리는 과일과 고리를, 청설모는 호두와 소나무씨를, 하늘다람쥐는 꽃눈과 낙엽송 그리고 겨울눈을 챙겨줍니다. 섬올빼미에게는 한겨울에도 펄떡거리는 살아 있는 생선을 줘야 했습니다. 야생 상태에서 먹던 먹이를 주어야 야생으로 돌아갔을 때 적응이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긴급 피난을 위한 진료소일 뿐인데 식객들이 평소에도 참 많은 숲속 수의사의 집. 수렵금지가 해제되는 시기에 사냥한 오리가 날개만 부러지고 멀쩡하자 먹을 수 있는 오리냐 상처 입은 동물이냐를 두고 논쟁이 오가다 결국 환자 동물설을 주장한 아내와 딸들의 기세에 졸지에 입원 환자가 되어버린 에피소드처럼 숲속 수의사의 집에서 벌어진 다양한 이야기들이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바다표범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큰곰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홋카이도 붉은여우는 수의사집에 상주하며 살 정도입니다. 일본에 사슴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야생의 사슴 떼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이 책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게 사슴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사슴도 뿔이 약한 시기엔 캥거루처럼 뒷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권투하듯 싸움을 한다는 거였어요.


"선생님, 올해에도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선생님, 활짝 핀 꽃이 있어요." 하며 시시때때로 연락 오는 마을 사람들 덕분에 동물들의 동향을 발 빠르게 알게 되기도 합니다. 다들 유능한 생태학자가 된 듯 자연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유명한 홋카이도 원시림을 볼 수도 있습니다. 한 번도 도끼를 대지 않은 천연림이 많은 곳입니다. 동부 해안선에는 2백 년도 더 된 떡갈나무숲도 있다고 합니다. 농지를 종횡단 하는 방풍림의 존재도 기특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들도 산악지대와 바다를 오가는 통로로 잘 활용합니다.


"자연이란 무대는 관객만 나타나면 언제든지 내보낼 배우와 시나리오를 갖추고 있었다." - 책 속에서


사진을 찍으러 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야생동물들. 겨울에 눈이 쌓이면 너무나 많은 흔적에 놀라게 된다고 합니다. 눈 위의 작은 흔적에 수많은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눈은 자연의 이야기꾼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습니다.


농사를 짓는 곳이기에 자연의 존재에 대해 되새길 수 있는 사건들이 많이 생기기도 합니다. 일찍 눈이 내려 수확량이 제로였던 해도 있었고, 눈이 늦어진 해에는 위장용 흰 털을 가진 눈토끼가 많이 사냥당하기도 했습니다. 납중독으로 천연기념물이 대거 폐사하고 농약 친 땅에 머물다 순식간에 죽어나간 조류들 등 환경과 관련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천연기념물 보호가 산업을 창출하지만 반면 이름 없는 것들은 소외되는 현실도 짚어봅니다. 그 많던 반딧불이, 뻐꾸기는 이제 보기 힘듭니다.


쉴 새 없이 진료소를 찾아오는 야생동물, 숲속에서 만나는 자연 속 이웃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홋카이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자연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있어 읽는 내내 포근해지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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