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뉴스
셰릴 앳키슨 지음, 서경의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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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NEWS, CNN, PBS에서 일하며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취재하며 다섯 차례 에미상과 에드워드 머로 탐사 보도상을 수상한 40년 경력의 언론인 셰릴 앳키슨. 뉴스의 죽음에 관한 보고서 <내러티브 뉴스 (원제 SLANTED)>를 통해 저자가 들려주는 오늘날 미디어의 실태를 낱낱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기자가 뉴스 소비자에게 사실보다 기자의 사견이 더 중요하다고 확신을 심어주게 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강력한 집단들이 교묘한 방법으로 만들어내는 내러티브들을 폭로합니다.


내러티브 narrative는 힘 있는 자들이 당신의 견해를 규정하고 제한하기 위해 들려주고자 하는 스토리라인을 뜻합니다. 더 이상 그에 대해서 질문이 나오지 않도록, 아예 질문을 할 생각조차 못 하게 하는 것이 내러티브의 목적입니다. 이것은 뉴스의 죽음과도 같습니다. 어떤 사실을 습득해야 하는지 유도하며 여론을 주도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으로 뉴스 기사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매체가 똑같은 몇몇 뉴스만 계속 반복하는 것도 바로 내러티브 때문입니다. 다양한 측면의 이슈를 한쪽 측면에서만 보여주는 경향이 곧 내러티브입니다.


반드시 거짓일 필요는 없습니다. 진실된 정보조차 내러티브가 될 수 있습니다. 고의적으로 편향된 방법으로 제시합니다. 이 이야기는 조지 오웰의 SF 소설 <1984>의 빅브라더와 닮았습니다. 스스로 독립적 사고를 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정보화시대에 이런 일을 해내려면 엄청난 조직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러티브 뉴스>에는 CNN, CBS, NBC, ABC, MSNBC, 블룸버그 뉴스, 뉴욕타임스 등 전·혁직 보도국장, 기자, 뉴스 편성책임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내러티브 뉴스와 뉴스의 사망에 대한 견해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팩트체커는 편파적 견해를 성문화한다. 괴담 사냥꾼은 진실을 저버린다. 온라인 지식은 의제 편집자들에 의해 결정된다. 언론의 자유는 검열에 의해 통제된다. 뉴스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그리고 당신은 소비자가 아니다. 단지 제품일 뿐이다." - 책 속에서


우리는 내러티브 뉴스를 보자마자 단번에 짚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뻔한 수법으로 하지 않고 교묘하게 이뤄집니다. 비의도적 편향이 많아 스스로도 인지 못하는 언론인도 많다고 합니다. 특히 예단 된 내러티브를 지지하는 목적으로 기사 취재하면서도 자각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자가 연방 최저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정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받았을 때, 기사에 적합한 사례를 찾기 무척 힘들었다고 합니다. 사실상 매일 출근하면 3개월 후엔 25센트씩 시급이 오르게 되어 있는 구조였던 겁니다. 그나마 간신히 찾은 사람은 은퇴한 노인으로 소일 겸 최저 임금을 받고 공원 청소를 하고 있어, 최저 임금으로 가족 부양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 사례는 미리 정해진 내러티브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어난 일입니다. 수만 명의 가정이 최저 임금 소득으로 힘겹게 아이들을 기르고 있다는 노동부 장관의 주장이 신문 기사에 넘쳐나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 주장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사를 써야 했던 겁니다. 이러다 보니 저자는 여러 사건을 경험하며 전형적인 내러티브를 따르기보다는 진정한 기사와 견해를 보도하겠노라 결심하게 됩니다.


보도 탐사상을 수차례 받았지만, 탐사한 것이 방송되지 못한 기사가 더 많았다고 고백합니다. 내부고발자들의 증언을 통한 비리, 부패를 파헤치는 기사들이 특히 사장되었다고 합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내러티브 뉴스>에서는 그렇게 사장된 기사를 소개합니다.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면 방송사 신뢰도에 치명적입니다. 올바른 저널리즘에 치명타를 입게 됩니다. 방송계에서의 오래된 관행 중 하나가 대놓고 퇴짜를 놓지 않고 손보면 될 것처럼 행동하며 수개월을 질질 끄는 겁니다. 결국 그 기사는 사장됩니다. 그러다 보니 책임 프로듀서의 정치적 성향대로 원고와 기사 방향을 바꾸는 데 익숙해집니다. 내부고발자와 내부감시자의 이야기들, 내러티브에 반하는 이야기들, 공정한 기사들을 지향하는 셰릴 앳키슨은 결국 퇴사를 하기에 이릅니다. 그 역시 퇴사하자마자 거짓 내러티브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국 정치 이야기가 주를 이르기에 트럼프와 관련한 내러티브가 빠질 수 없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에 대한 미디어의 공격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많다는 겁니다. 미국 정치인 중 트럼프 대통령만큼 내러티브 연출에 능숙했던 인물은 없었다고 합니다. 전 세계 뉴스 미디어를 대혼란에 빠뜨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이 전파하는 내러티브가 더욱 큰 문제라는 걸 짚어줍니다. 사실 트럼프는 누구에게나 다 '공평하게' 공격했지만 미디어에선 인종, 성별 등 내러티브 입맛에 맞는 것만 편향적으로 내보였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중립적인 기사를 쓰면 편향적이라고, 친트럼프로 낙인찍혔다고 합니다. 명확히 반트럼프적 성향을 보이지 않으면 비난받았던 겁니다. 당시 미디어의 허위 내러티브가 도를 넘어섰던 시절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관심사를 강요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 이면의 스토리를 밝히는 <내러티브 뉴스>에서 낱낱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중은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미디어가 결정해 주는 게 아닙니다. 미투 운동이 끔찍하게 무기화되었을 때처럼 내러티브를 사악하게 파괴의 무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백신의 안전에 관한 이슈를 제기하면 반백신, 음모론자로 모는 내러티브도 일상이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은 셰릴 앳키슨의 정당한 기사를 익명의 '과학 사실 검증팀'의 판단으로 이 기사는 거짓 정보를 담고 있다는 표시까지 했습니다.


성공적으로 뉴스 보도에 정착한 선동적 용어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호모포빅, 이슬람포빅처럼 특정 정책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나 특정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포빅,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되는 문장 "틀렸음이 밝혀졌다", 대중의 관심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짜 뉴스, 반이민·반과학·반총기류 처럼 입맛에 맞는 내러티브의 경계를 벗어난 것에 붙이는 반- 딱지, 과학적 이론이나 증거 및 결론에 이견을 보이는 사람에게 붙이는 부정자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내러티브의 실체를 파악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내러티브는 파괴됩니다. 내러티브 뉴스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 편에 서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로 여론조사에 대한 기사가 급증하는 요즘, 2020 미국 대선에서의 여론조사에 대한 내러티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안겨줍니다. 여론조사가 여론에 대한 정당한 측정이 아니라 내러티브를 추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내러티브에 맞지 않는 여론조사는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진실이 내러티브에 맞지 않을 때 뉴스는 진실을 버립니다. 뉴스가 편파적으로 되는 경로들을 사례로 보여주며 미디어 신뢰도의 폭락을 다룬 책 <내러티브 뉴스>. 내러티브에 세뇌된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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