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 클락워크 도깨비 - 전3권 고블 씬 북 시리즈
정지윤.남유하.황모과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K-콘텐츠의 바탕이 되는 소설, 웹툰 등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다양한 감성과 취향을 아우르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탄탄한 문학 세계를 갈구하게 됩니다. 특히 SF, 호러, 판타지, 미스터리 등 장르소설에 거는 기대감도 커졌습니다. 도서출판 들녘의 새로운 문학 브랜드 '고블'의 런칭이 반가운 이유입니다.


고블 씬 북 시리즈 시즌 1에서는 중편 분량의 소설 세 권을 내놓았습니다. 장르의 맛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동과 주제가 가진 깊이가 장편 못지않은 옹골찬 스토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독립출판물로 단편을 출간하기도 했던 편집자 출신 정지윤 작가의 첫 데뷔작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기술 발달로 세상이 바뀌는 시점. 그 경계를 넘어선 이들과 아직 넘지 않은 이들 간에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다룬 이 소설은 충분히 일어날 법한 현실적인 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더 실감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인체에 삽입해 시각, 청각에 직접 간섭하게 하는 감응형 생체칩인 텐서칩. 고도로 발달된 스마트폰이 몸속에 있는 느낌을 상상해 보세요. 생체칩이 상용화되는 시점에 이르자 생체칩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자 기술보호구역을 만들어 기술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됩니다.


얼핏 상상하는 것처럼 감옥 같은 곳이 아니라 일반 주거구역에 위치한 아파트 단위로 설정되어 있으니 위화감은 덜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기술보호구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제 서울에 남은 곳은 베니스힐 아파트뿐입니다. 텐서칩 없이는 외부에서의 생활이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베니스힐 아파트에 사는 고등학생 요한은 단순 사고사가 아닌 것 같은 친구의 죽음 때문에 방황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과외 선생님의 도움으로 죽음에 얽힌 진실을 찾아 나서는데…


텐서칩을 반대하고 베니스힐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 그들에겐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었습니다. 보호구역이 가진 흑막을 밝혀가는 과정을 청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여정은 통쾌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라노벨 제목처럼 챕터마다 서술형으로 된 소제목을 붙였는데 풍자하는 듯한 반어법이 꽤 맘에 들었습니다. 발달된 증강현실이 상용화되었을 때 충분히 일어날 법한 근미래 이야기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옳든 그르든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을 거스를 때, 과연 인간다운 생활이 유지될 수 있을까. 요즘 방역패스와 관련한 이슈의 고민과도 맞물린 주제이기에 더 생생하게 와닿는 소설입니다.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자·과학소재공모전 우수상 남유하 작가의 소설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겨울의 눈부신 은빛을 배경으로 스산한 푸른 수염 동화 분위기도 슬며시 나기도 하는, 판타지와 호러를 오가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입니다.


어느 해부터 겨울이 길어지더니 봄이 오지 않습니다. 일 년 열두 달 추위에 짓눌려 사는 마을이지만, 주변 검은 숲의 석탄 개발 사업 덕분에 스미스 씨네 공장을 다니며 마을 사람들은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얼음장을 마치고 슬픔에 빠진 소녀 카야. 죽은 사람의 영혼이 가족과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는 이곳은 죽은 이를 얼음 속에 보관하는 얼음장 관습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만 같은 생생한 모습의 얼음관을 집에 두는 거지요.


그런데 스미스 씨가 엄마의 얼음관을 팔라고 합니다. 정원에 둔다고 말입니다. 팔지 않으면 아버지가 실직하게 되니 결국 엄마의 얼음관을 스미스 씨네 정원을 장식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좀 싸해집니다. 신사인 척 가면을 쓰고 다니는 스미스 씨의 음험한 계략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는 카야의 성장기 서두만 읽은 아쉬운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2편, 3편 등 카야와 은빛 늑대의 활약이 더 기대되네요.


한국과학문학상 대상·2021 SF어워드 수상자 황모과 작가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스팀펑크 소설 <클락워크 도깨비>. 고종 시대 궁궐을 밝힌 전등과 노면전차 등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말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와 산업화 아래에서 많은 부침을 몸소 겪었던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도깨비라는 판타지 요소까지 버무려진 흥미로운 스토리입니다.


대장장이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연화에겐 매일 밤 씨름을 하는 도깨비 친구 갑이가 있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도깨비입니다. 도깨비는 사람들이 믿어줘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경복궁에 휘황찬란한 불이 나타날 정도니 도깨비의 시대는 끝이 났음을 갑이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화는 한밤에도 전등을 밝힐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낮에 갑이가 활보할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고 믿습니다. 갑이와 함께 경성으로 간 연화는 근대화를 몸소 경험하는데…


<클락워크 도깨비>에서는 불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큽니다. 산업화 동력으로서의 불이라는 직접적인 의미도 있고, 마음의 분노와 뜨거운 기운의 원천이 되는 불이라는 양가적인 의미가 등장합니다. 제국시대를 살아내며 남의 불을 밝히기만 했던 이들의 삶을 깡통이라 부르는 인조노동자에 빗대기도 하고, 누군가 꺼뜨리려 할 때 더 빛나는 혼불이 되어 타오르기도 한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역동적이면서도 너무나도 가슴 아픈 그 시절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고블의 첫 번째 시리즈로 출간한 세 권을 읽고 나니, 고블의 방향성이 MZ 세대가 좋아할 만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가볍고 얇은 판형인 고블 씬 북 외에도 앤솔로지, 장편소설, 그래픽노블 등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낼 거라니 고블 브랜드를 눈여겨봐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