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두 번째 밤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2
김보람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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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 작가 프로젝트에 선정된 공포 단편 소설과 네이버와 함께 개최한 YAH! 공포 문학 공모전 수상작들이 모인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두 번째 밤>. 2017년에 출간 첫 번째 책을 읽었을 때 당시까지만 해도 공포물은 일본소설이 제대로라고 여겼던 저였기에 한국 공포소설 수준에 깜짝 놀랐었는데, 두 번째 책은 공포가 더 진하게 담긴 느낌입니다.


전설, 초자연 공포물뿐만 아니라 현대를 배경으로 한 호러틱한 사건들까지 담은 황금가지의 이 시리즈 매력 있어요.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녹아있는 10편의 공포 단편 소설을 읽으며 다양한 공포를 맛봅니다. 미지근한 공포, 센 공포 다 있어서 들었다놨다~ 재미있어요.


김보람 작가의 <점>은 남편 눈에는 안 보이고 아내 눈에만 보이는 모르는 남자가 처음엔 창문 밖에서 나타났다가 점점 집 안으로 들어와 자리 잡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을 그렸습니다. 귀신이 있는 쪽은 곰팡이가 핍니다. 나중엔 화장실에까지 들어선 귀신 때문에 화장실 사용도 못 할 지경입니다. 환장할 노릇이죠. 간신히 신축 임대 아파트에 이사 왔건만 맨 정신에 치매 환자가 된 기분으로 만들어버리는 귀신의 존재. 이미 죽은 귀신에게 살의가 치솟을 정도입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곰팡이 핀 쪽에 귀신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찜찜해질 수 있다는 것!


아소 작가의 <구조구석방원>은 스티븐 킹의 공포 스타일과 닮은 느낌입니다. 현실 배경인데 초자연 미스터리가 의뭉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문을 잠그지 않고 지내는 걸로 동기 간의 내기가 붙은 상황. 발단은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도둑이 침입했는데 남자가 사는 집이었다면 절도로 끝났을 일이 성폭행에 이르게 된 사건을 두고 남녀 간의 해석 차이로 서로 오기가 발동한 겁니다. 문을 잠그지 않는다는 건 현관문의 잠금장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베란다 창문까지 다 오픈된 상황을 말합니다. 처음엔 가뿐하게 시작했지만 점점 수상한 남자들이 집 주변에 나타나고, 결국 침입하기에 이릅니다. 신상 털기, 혐오, 차별 등 인터넷에서 쉽게 벌어지는 일들을 미스터리 공포와 버무린 아이디어가 신선했습니다.


배명은 작가의 <홍수>. 태풍이 강타한 마을. 둑이 무너져 집들이 물에 잠기고 미처 피신하지 못한 나는 간신히 옥상으로 대피하곤 정신을 잃습니다. 깨어나 보니 뒷산에 있다가 떠밀려 내려왔다고 하는 왠 모르는 남자가 있습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이쯤에서 이미 이 남자가 귀신이라는 걸 알아차릴 겁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물귀신이 되어 사람을 홀려 물에 빠뜨린다는 공포 이야기를 색다르게 풀어낸 소설입니다.


유아인 작가의 <상어>. 돌아가신 친구 할머니가 꿈에 자꾸 나와 혼란스럽습니다. 뭔가 부탁할 게 있어서 꿈에 나오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꿈에 누군가가 등장했을 때 기묘한 일이 생기면 꿈 해석도 신중해지지요. 애초에 꿈에 그렇게 등장하는 방식이 무의식의 반응이라고 얼버무리기엔 참 기묘하잖아요. 어쨌든 복수심을 가진 인물이 꿈에 나타나 피폐하게 만드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습니다.


배상현 작가의 <심해어>  제 취향입니다. 지하철에 갇힌 사람들. 하루가 다 지나가도록 구조대는 오질 않습니다. 휴대폰 배터리도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 지하철은 깜깜한 어둠 그 자체입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소리 하나에도 예민합니다. 점점 사람들은 이상한 분위기에 휩싸입니다. 완전한 어둠의 상태인 이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심해어에 비유하는 작가. 인간 본연의 공포심을 자극하며 공포가 극대화되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전사라 작가의 <공포의 ASMR>도 엄지척입니다. 찐따였던 여학생이 선망하던 친구를 따라 하며 SNS를 하면서 인기녀가 됩니다. 하지만 동급생의 폭로로 무너지게 되자 복수에 나서는데, 그 이야기를 ASMR로 속삭입니다. 이 영상을 우연히 본 누군가가 ASMR 영상에 이상한 소리들이 들린다며 커뮤니티에 걱정과 두려움을 담은 글을 올립니다. 솔직히 유사 범죄를 일으킬까 봐 걱정스러울 만큼 소재가 리얼합니다.


이규락 작가의 <아기 황제>는 전설의 고향 분위기입니다. 데릴사위로 장가를 온 남자는 밤마다 긴 목을 한 뱀 같은 여인이 나타나는 악몽을 꿉니다. 귀신같은 인상을 가진 아내에 대한 의심이 더해지면서 남자의 운명과 이 여인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그냥 일어나는 사건은 없습니다. 여인들의 한 많은 삶과 억압의 역사가 녹아든 공포물입니다.


최정원 작가의 <할머니 이야기> 역시 극한에 다다른 여인의 안타까운 삶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슬펐던 공포 소설이었어요. 할매 괴담이 있는 마을의 역사는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처절한 복수를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효빈 작가의 <처형학자>는 꽤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전쟁에서 매번 99명의 전쟁 포로를 데려오는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포로들은 각자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럽고 끔찍한 죽음을 구상해 내야 하고, 1등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자신이 생각해낸 죽음의 방식으로 죽는 겁니다. 그래서 장군의 별명이 처형학자입니다. 장군은 10번을 우승하면 영원히 해방시켜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려 9번이나 우승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장군은 왜 이런 악마 같은 행위를 하는 걸까요.


차삼동 작가의 <검은 책>은 질투심이 낳은 검은 유혹에 빠진 여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저주를 걸어 해를 끼치는 소재는 흔하지만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라이벌 의식을 건강하게 펼치는 게 아니라 심기 불편함으로 받아들인 아이의 마음, 한순간의 유혹에 빠져드는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그렇기에 더 안타까워집니다.


이번에는 SF 요소의 공포물은 없어서 살짝 아쉬웠지만, 지금 현실의 어두움을 반영한 소재가 다양하게 담겨 있어 만족스럽습니다. 다음엔 어떤 공포를 선사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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