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들
에마 스토넥스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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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를 지키던 세 명의 등대원이 사라졌다. 당신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가?”


1900년 12월 영국 엘런모어 섬에서 세 명의 등대지기가 사라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 <등대지기들>.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미해결 사건인 만큼 수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어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습니다. 제라드 버틀러 주연의 <키퍼스> 역시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실제 사건은 섬에서 일어났지만 소설에서는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타워 등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망망대해가 펼쳐진 타워 등대에서는 밀실 효과가 훨씬 높아집니다. 타워 등대의 구조를 보면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곳은 셋오프 구간입니다. 순식간에 셋오프를 덮치는 파도의 위력이 소설에서도 묘사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든 소설에서든 문은 안쪽에서 잠겨있었습니다. 싸움의 흔적도 없고, 빠져나간 흔적도 없습니다. 등대 안에 있던 시계 두 개는 모두 8시 45분에 멈춰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령처럼 세 명의 등대원이 모두 사라진 겁니다.


사라진 등대원들의 행방을 알 만한 단서가 없는 상태로 20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미스터리로 남은 실종 사건에 해양 모험 소설가 댄 샤프가 관심을 기울입니다. 사건 중심에 있던 사람들을 만나 숨겨진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합니다.


댄 작가는 주임 등대원 아서의 아내 헬렌, 부등대원 빌의 아내 제니, 임시등대원 빈센트의 연인이었던 미셸을 만나 인터뷰합니다. <등대지기들>은 1972년 당시 세 명의 등대원들의 시점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와 1992년 남겨진 여자들의 시점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면서 생생하게 그들의 감정이 다가오는 듯한 기분입니다.


등대하면 낭만적인 분위기를 먼저 떠올립니다. 보는 입장에서는 그렇지요. 그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어떨까요. 8주의 근무 기간과 4주의 육지 생활을 오가는 등대원들은 등대에서 지낼 때 외로움, 고립감, 단조로움에 익숙해 있습니다. 해안에서 몇십 킬로미터 떨어진 외딴곳에 서 있는 고독한 대못 같은 타워 등대에서라면 더 그럴 겁니다.


아서와 헬렌, 빌과 제니는 겉으로 보면 완벽한 부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습니다. 결혼을 꿈꾸는 신참 빈센트와 여자친구 미셸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습니다. 각자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펼쳐질 때마다 마음을 덮은 벽이 한 겹씩 떨어져 나가는듯합니다.


헬렌은 주임 등대원의 아내로서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참사를 같이 겪은 사람들끼리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있을 테지만, 헬렌과 제니 사이는 껄끄럽습니다. 부부간의 비밀이라 하면 뻔한 클리셰가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걸 예감한 독자가 이미 편견을 가진 채 바라볼 거라는 걸 작가는 교묘하게 짚어냅니다. 전과자였던 임시 등대원 빈센트를 범인으로 추정하는 낙인을 찍으며 사건은 흐지부지되었고, 당시 연인이었던 미셸은 사람들이 편한 대로 판단해버린 오명에 슬퍼하지만 숨죽인 채 살아왔습니다.


<등대지기들>은 세 명의 등대원들의 마음과 함께 남겨진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 의미 있습니다. 작가와의 인터뷰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 돌이켜보게 된 계기로 작용합니다. 무덤덤하다가도 격정적인 슬픔이 자리 잡은 여자들의 목소리를 에마 스토넥스 작가의 은유적인 문장과 절제미가 돋보이는 결을 가진 문체가 마음에 쏙 들었어요.


이제는 자동화되어 무인 등대 시스템으로 운영하니 등대지기라는 단어도 낯설어졌습니다. 등대원의 삶과 등대원 가족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소설 <등대지기들>.


저마다의 사연 속에서 세 남자에게 등대는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세 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한 가지 이상의 측면이 있다."는 책 속 문장처럼 그들의 삶을 섣불리 판단 내릴 수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미스터리 실화에서 영감을 얻는 소설이기에 어떻게 결말지을지 기대하며 읽는 맛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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