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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 신라공주와 페르시아왕자의 약속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0월
평점 :
제16회 류주현문학상 수상작이자 드라마 제작 중에 있는 <김의 나라>를 포함해 꾸준한 관심을 받는 베스트셀러 <한복 입은 남자>, <제명공주> 등 치밀한 역사적 고증과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하는 한국 대표 역사소설 작가 이상훈의 신작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전작 <김의 나라>는 청나라 황제의 후손이 애신각라(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라) 김씨로 청나라 황실의 뿌리가 신라에서 왔다는 역사서를 바탕으로 문학성과 재미를 동시에 잡은 역사소설이었다면,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신라와 페르시아의 역사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역사적 고증을 통해 밝혀내는 여정을 담은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입니다.
서울 강남에 자리 잡은 테헤란로. 1977년 한국과 이란 간 친교의 상징입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습니다. 신라와 페르시아 역사를 다룬 소설이라는데 테헤란로가 왜 등장할까요? 바로 페르시아가 오늘날의 이란입니다. 페르시아 하면 찬란한 문화를 이룬 제국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란은 핵무기 위협을 일삼는 악의 축으로 부정적 인식이 강합니다. 분명 같은 민족에 같은 나라인데도 이미지는 상반됩니다. 페르시아의 역사마저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란이 우리와는 역사적 인연이 꽤 깊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페르시아왕자와 신라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기록한 페르시아 대서사시 쿠쉬나메가 영국국립박물관에서 발견되면서 신라와 페르시아 간 미스터리한 역사의 퍼즐을 푸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쿠쉬나메는 역사책은 아니지만 우리의 삼국유사처럼 역사적 참고자료의 위치를 가졌다고 합니다.
역사소설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이란의 구전 전설로 전해내려온 페르시아왕자와 바실라(페르시아가 신라를 부르던 명칭)공주의 사랑을 신화를 넘어 쿠쉬나메의 기록으로 접근하며, 기록에 없는 부분은 유물과 유적을 통해 작가의 상상력을 채워 잊힌 역사의 단편을 되살려냈습니다.
페르시아 역사를 얼마나 아시나요. 역사 교양서인가 소설인가 혼동될 정도로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를 읽다 보면 생소한 페르시아 역사를 하나 둘 알아가는 과정에서 놀라움의 연속을 경험할 겁니다. 페르시아는 로마 제국보다 훨씬 이전에 세계 최초의 제국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메소포타미아 문화를 이어간 페르시아의 역사는 유럽 위주, 백인 우월 역사관에 덮여 그 진가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영화 <300>은 그리스를 지키기 위해 싸운 스파르타 영웅들만 부각했고, 페르시아 제국은 야만인 침략자의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아라비안나이트라 부르는 천일야화는 아라비아 문학이 아니라 페르시아 문학이라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알라딘과 요술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신밧드의 이야기가 모두 페르시아인들의 이야기였던 겁니다.
기독교 문화였던 중세 유럽의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배격은 아랍 이슬람에게 멸망당한 페르시아의 역사마저도 잊게 만들어버렸습니다. 훅 와닿는 비유가 책에 등장하는데, 일제강점기에 쓴 윤동주의 시를 일본문학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소설 속 희석은 방송국 다큐멘터리 피디입니다.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집안의 조상이 페르시아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대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들의 조상이 페르시아 제국에서 건너온 왕자의 후손들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페르시아왕자가 실크로드를 거쳐 먼 신라에 왔던 걸까요.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희석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발견해낸 신라와 페르시아의 관계를 장대한 세계사 관점으로 펼쳐냅니다.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개명 후 이슬람 극단주의 신봉자의 주도로 혁명이 일어나 기존 왕조가 무너지면서 오늘날의 이란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천오백 년 전에도 이런 역사가 있었던 겁니다. 페르시아와 이슬람의 전쟁입니다.
페르시아는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전 최고의 불교 국가였고, 이후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지정합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짜라투스트라가 바로 조로아스터의 그리스 이름입니다. 이때만 해도 페르시아는 수준 높은 문화를 가진 제국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으로 무장한 아랍 세계에게 정복당한 페르시아. 제국이 무너질 때 왕자 아비틴은 정예군사를 거느리고 실크로드의 중심지 사마르칸트로 피신했고, 이후 당나라에서 몇 년을 머물며 페르시아 제국을 되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시대입니다. 신라와 당나라 시대라고 하니 나당전쟁이 떠오르네요. 사실 나당전쟁에 대해서도 이 소설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습니다. 역사 시간에 통일신라는 당나라의 도움을 받았기에 자주적 통일이 아니라는 것만 외우면서 나당전쟁의 결과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입니다.
이상훈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당시 세계 최대 제국 당나라와 싸운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당시 당나라를 이기지 못했다면 현재 한국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7년에 걸친 장기전으로 세계사적 사건임에도 우리는 나당전쟁의 의미를 외면해왔습니다.
나당전쟁 시기에 페르시아왕자 아비틴은 이미 신라에 와있었고, 아비틴은 피난 시절에 인연 맺었던 화랑 죽지랑과 함께 나당전쟁에 참가해 신라를 돕습니다. 잃어버린 나라의 설움을 가진 아비틴은 이렇게 신라에 머물며 페르시아 재건을 위한 복수의 칼날을 갑니다.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에 등장하는 프라랑 공주는 문무왕의 딸로 추측합니다. 당시 망국의 외국인 왕자와 결혼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싶겠지만, 의외로 우리 역사는 오래전부터 다문화가정을 이뤘다는 걸 알려줍니다. 아비틴과 프라랑의 아들 페리둔이 열 살이 되었을 무렵, 페르시아 부흥 세력을 한데 모으기 위해 그들은 페르시아로 떠납니다. 이때 공주는 건강이 좋지 않아 함께 가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합니다. 아비틴이 이끄는 페르시아 부흥 세력과 아랍 이슬람 왕자 쿠쉬바의 싸움이 무척 치열했다고 합니다. 아비틴과 아들 페리둔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다시 신라로 돌아왔을까요.
로맨스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로맨스 감성이 푹 담긴 달달 문체는 아니어서 조금은 심심하게 읽혔는데, 스토리 자체가 워낙 흥미진진하다 보니 스토리텔링만으로도 울컥 찡한 감정이 솟구치면서 감성 마구 자극하더라고요. 읽는 내내 어찌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는지, 소설로 배우는 역사 콘텐츠 효과 제대로입니다. 신라, 당나라, 페르시아, 이슬람 등 당시 세계사 흐름이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에 담겨있습니다.
고대 최대 규모의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당나라와 이슬람의 전쟁인 탈라스 전투에 나섰던 당나라 장수 고선지는 고구려 유민 출신이었다는 것도 놀랍고, 페르시아 부흥 세력과의 인연도 흥미진진합니다. 중국이 당나라 승려라고 우기는 혜초와의 인연, 양귀비의 양아들이 된 안녹산의 난에 엮인 비하인드스토리 등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소리가 절로 나올만한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페르시아왕자와 신라공주의 스토리와 연결되는 소설적 재미는 물론이고, 정작 우리는 이름만 달달 외우고 그 의미를 등한시한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유일무이한 기록이라는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와의 연결고리, 원성왕의 무덤을 지키는 서역인 석상의 비밀을 추측하는 여정 등 깨알재미를 주는 요소가 무궁무진한 소설입니다.
경주국립박물관에서 흘려 지나쳤던 페르시아 유물들을 다시 한번 제대로 보고 싶어집니다. 개방적인 신라의 진짜 이야기를 찾게 해준 역사 미스터리 소설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쿠쉬나메와 같은 기록 덕분에 왜곡된 역사관으로 묻혔던 소중한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