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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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출간, 2019년 영문판 출간 후 2020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일본 내에서도 역주행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소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일본 사회에서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며 살아온 재일한국인 유미리 작가의 책이기에 관심을 끌었습니다. 처음엔 일본 사회에 대한 사이다 비판을 만나며 묘한 통쾌감을 얻지 않을까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밀려드는 감정은 꽤 착잡한 슬픔이었어요. 작가가 이야기하는 차별과 배제는 한국도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후쿠시마 출신 노동자 가즈. 우에노역 공원의 노숙자 중 한 명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나름 성실히 일하며 살아왔지만, 줄줄이 동생들이 있다 보니 형편은 나아지질 않습니다. 사는 내내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1964년 도쿄올림픽 개최로 인한 공사가 한창 있었던 1963년에는 이미 가정을 꾸린 상태였지만 집을 떠나 도쿄에서 막일 노동자로 일합니다. 값싼 인건비였지만 도쿄 올림픽이 끝날 무렵부터는 곳곳에서 도시 개발의 바람이 불어 그래도 막일이나마 할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가즈의 인생은 잘 풀리질 않습니다. 갓 스무 살이 된 아들이 갑작스레 죽어버렸고, 부모님 그리고 아내까지 먼저 떠납니다. 일을 하느라 집을 비운 20여 년의 세월. 갓난아기 때 이후로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했던 아들의 죽음은 그의 삶의 목적을 잃게 만듭니다.


타향에서 계속 돈벌이를 해야만 했던 가즈에게는 이제 결혼한 딸과 손녀만 남았습니다. 돌아갈 집이 없습니다. 가족들의 이른 죽음을 접하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을 사는 것이 이젠 무서워졌습니다. 창창한 손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가즈는 결국 처음으로 노숙을 하게 됩니다.


"이 공원에 사는 노숙자들은 이미 대부분 누군가를 위해 돈을 벌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죽을 곳을 찾아 우에노공원에서 며칠 지내다 쭉 눌러앉다 보니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칠순이 넘은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우에노공원에는 경제 고도성장기에 저마다 큰 꿈을 안고 도쿄로 상경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거품 경제 붕괴 이후 늘어만 가는 노숙자들. 옛날에는 가족이 있었고, 집이 있었던 그들이 이제는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는 살아 있어야 하니 근근이 폐품 수집을 하며 살아갑니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에서는 집이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이 절묘하게 대비됩니다. 가즈의 눈에는 우에노공원 주변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 아이와 함께 지나가는 가족, 대화를 나누는 친구 등 그들이 너무나도 선명히 잡힙니다. 하지만 집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노숙자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웃포커싱되는 배경일 뿐입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압권입니다. 가즈는 인생의 절정이라고 말할 만한 시절조차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설마 자신이 노숙자가 될 줄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나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남에게 손가락질당할 짓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익숙해지지 못했을 뿐이다. 어떤 일이든 익숙해질 수 있었지만 인생에만은 그러지 못했다." -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힘겨운 그들에게 또 다른 비참함을 안겨주는 건 특별청소라는 명목으로 천막집을 이동시키는 강제 퇴거입니다. 천황가에서 근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람하러 오면 천막집을 치우고 공원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올림픽 유치를 빌미로 제한된 구역으로 내몰립니다.


작가는 2006년 강제 퇴거에 관한 취재를 하며 노숙자의 발자취를 쫓았습니다. 겨울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이었습니다. 재해가 닥쳤을 때도 대피소 입소는 노숙자들에겐 해당되지 않습니다. 고령의 노숙자들이 과거 가난한 농촌에서 올라온 청년들이었고, 일본의 경제 성장 바탕에는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했다는 걸 누구도 기억하고 있지 않기에 작가는 소설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고 있고 그 결과물이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입니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재해와 원전사고 때는 당시 노숙자는 물론이고 후쿠시마에서 대피한 사람들이 다른 현의 대피소 입소나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고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이런 차별과 배제를 행한 측에 오히려 공감과 동정이 쏟아졌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집과 일을 잃은 이들이 2020 도쿄 올림픽을 위한 공사 때 또다시 상경 노동자로 일했을 거라고 합니다. 세월이 흘렀건만 1964년 도쿄 올림픽과 다를 바 없는 현재입니다. 2019년 영문판 출간 시 작가의 말에서는 재해 시 배제되는 노숙자 뿐만 아니라 장애인 등 소외계층에 대한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던 주인공 가즈.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참 쓸쓸합니다. 반짝이는 도시의 빛나는 영광 뒤에 아웃포커싱된 것들을 바라본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후쿠시마 출신 가즈의 이야기에는 지역 문화와 방언이 많아 이질감에 낯설었는데, 영어로는 어떻게 번역했을지 궁금해질 지경이더라고요. 한국어판은 재일교포 3세 강방화의 번역으로 매끄럽게 완성되어 감정선이 정말 맘에 쏙 들 정도로 읽는 맛이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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