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게 뭐야, 내가 좋다는데 - 모로 가도 뭐든 하면 되지
이해범 지음 / 들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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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를 업으로 삼으려니 통장 잔고는 늘 바닥이지만 잔돈처럼 소박한 순간들을 모아 인생이라는 돼지 저금통을 채워가는 중이라는, 20대 청년 감성으로 30대 중반을 달리고 있는 이해범 작가의 에세이 <알 게 뭐야, 내가 좋다는데>.


'모로 가도 ~만 하면 되지'라는 말을 자기합리화 멘트로 써먹기만 할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저 말이 인생 명언이라는 느낌입니다. 읽는 내내 우리 집 아이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청소년 아들의 진로를 두고 생각이 복잡해지는 나날들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대기업을 다니지도 않고 사업이 성공했거나 특출한 유명인도 아니지만, 그저 이런 사람도 잘 살고 있다는 걸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는 작가. 힘을 좀 빼고 흐느적거리며 살아도 괜찮다는 걸 보여줍니다. 힘을 뺀다는 것은 내일의 걱정을 굳이 오늘 하는 에너지 낭비 대신 무기력하게 피하지 않으면서도 현재를 사는 것에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근자감 장착은 필수입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게 애초에 공백 상태에선 생기지도 않을 테지요. 조금은 할 수 있는 것들에서 싹틉니다. 이해범 작가가 좋아하는 건 운동입니다.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인 승부의 세계여서 오히려 운동만큼 좌절에 빠지기 쉬운 것도 없겠다 싶을 테지만, 다양한 운동 종목을 섭렵하며 터득한 것은 운동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가 꽤 크다는 겁니다.


중도 포기의 아이콘이라 스스로도 부를 만큼 끈기가 부족한 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정도입니다. 근자감과 허영심이 몇 스푼 가미된 SNS는 끈기없음의 위력을 이겨내는 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할 때도 컷오프 시간을 한참 벗어나 꼴찌를 면하지 못했지만, 창피함보다는 완주의 벅참을 만끽할 줄 압니다. 지는 경기를 했어도 누군가에겐 영감을 안겨주고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암으로 아빠가 일찍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이제는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여행책을 손에 쥔 아빠의 모습이 오래 가슴속에 남는 건 치료를 핑계로 여행 한 번 함께 못 가본 게 뒤늦게 후회되어서이기도 합니다. 아빠의 일을 계기로 주어진 삶을 충분히 더 즐기고 싶어졌습니다.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쓰는 습관은 나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까무룩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낡은 일기장을 들추다 보면 당시엔 행복하다 느끼지 못했던 것들도 지금 돌이켜보니 행복해 보입니다.


잦은 회식과 주말 등산으로 직원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상사가 있었던 곳에서 그냥 호구 말고 차라리 살짝 미친 호구가 되는 걸로 나름의 반항도 해보며,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에서 살아남으려고 바둥거렸던 직장 생활도 추억으로 남습니다.


수영 강사를 하면서는 초보 강사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이겨내는 법을 체득했고, 체대 입시생들의 조력자로 재능을 발휘하기도 하면서 짧다면 짧은 인생에서 경험치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남이 보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스물아홉 살 때 친구 따라 강원국 작가 강연에 얼떨결에 갔다가 책 만들기를 버킷리스트에 추가하고서 5년이 지난 지금은 작가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몇 장 쓰고 나면 더는 쓸 내용이 없더라며 4년을 끙끙댔지만, 힘을 빼고 쓰다 보니 어느새 들려줄 만큼의 글이 모였습니다.


잠자고 있던 열등감을 깨우는 헛짓을 하며 분수에 맞지 않는 삶을 갈구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경험치를 쌓아갈수록 분수를 초과하는 건 어쩌면 더 초라한 삶만 만들 뿐일지도 모른다고 깨닫습니다.


<알 게 뭐야, 내가 좋다는데>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을 설레게 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결심한 저자의 이야기입니다. 조언을 빙자한 잔소리만 하게 되는 엄마 입장으로 읽었는데도 덕분에 불안감이 줄어든 기분입니다. 누가 뭐래도 정말 괜찮다고, 행복하다고 말할 줄 아는 저자와 같은 마인드라면 걱정은 좀 접어둬도 될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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