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록 - 미국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제국 건들건들 컬렉션
폴 배럿 지음, 오세영 옮김, 강준환 감수 / 레드리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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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정헌법 제2조는 "무기를 보유, 휴대하는 시민의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국민의 무기 휴대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총기의 역사 그 자체라고 규정할 만큼 미국에서 총기는 단순한 법 집행 수단이나 상업 용품이 아닙니다. 총기를 자유, 개인주의, 자립의 상징으로 여기는 미국인 특유의 정체성을 이해해야 총기 소지가 일상생활인 그들의 행동양식을 알 수 있습니다.


밀리터리 전쟁사 전문 레드리버와 24만 밀리터리 전문 유튜브 건들건들이 함께 만드는 건들건들 컬렉션 시리즈 신간 <글록>. 경찰도, 범죄자도, 일반 시민도 갖고 있는 권총 글록의 역사는 유튜브 영상과 함께 보면 더욱 생생합니다.


콜트, S&W, 베레타 등이 자리 잡고 있던 미국 총기 시장에 파란의 물결을 몰고 온 트리거가 된 사건이 있습니다. 1986년 은행털이범 2명과의 짧은 총격전에서 FBI 요원 2명 사망, 3명이 영구적 장애를 입었고, 2명이 다친 FBI 역사상 최악의 총격전 일명 마이애미 총격 사건. 당시 범죄자들은 20발 탄창을 끼울 수 있는 고성능 화기로 무장했던 반면 요원들은 6발짜리 탄창을 계속 재장전하느라 화력에서 차이가 났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결국 더 좋은 총을 찾기 시작합니다.


한편 오스트리아에서는 오스트리아 국방부에 군용 칼, 총검을 납품하는 가스통 글록이 완전히 생소한 분야인 신형 권총 사업에 뛰어듭니다. 당시 리볼버를 주력 권총으로 사용하던 오스트리아 군이 신형 권총으로 교체를 원했습니다. 기존의 총이 가진 단점을 보완한 신형 권총을 만들어낸 가스통 글록이 내놓은 첫 번째 모델이 바로 글록 17입니다. 가볍고 탄력성 좋은 폴리머 플라스틱을 권총에 적용해 기존의 권총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쟁사들을 제치고 오스트리아 군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글록>에서는 가스통 글록이 어떻게 전통의 강자들을 이길 수 있었는지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 마이애미 총격 사건으로 미국이 신형 권총을 원했고 리볼버의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글록. 하지만 수입산 글록의 미국 시장 진입은 만만찮았습니다. 금속 탐지기를 무사통과하는 플라스틱 권총이었던 글록을 두고 하이재커의 전용 무기라는 자극적 기사가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민자 출신 이동 총기 판매상이었던 발터는 글록의 미국 시장 진입을 적극적으로 끌어냅니다. 이후 미국 지사 최고 경영진이 되기도 한 발터의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17연발 탄창을 가진 글록 17. 총기 규제 진영의 반대는 오히려 글록에게 호재로 작용합니다. 자극적 기사 덕분에 민간 수요가 증가합니다. 과도한 관심이 오히려 회사와 제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겁니다. 미국의 안보 기관, 군부대들도 글록에 호의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경찰 수가 가장 많은 NYPD가 글록을 허용하자 다른 지역의 경찰들도 글록으로 교체하게 됩니다.


가스통 글록은 여러 면에서 20세기의 새뮤얼 콜트와 닮았습니다. 미국인들이 사랑한 콜트의 리볼버는 카우보이 영화의 단골 무기였습니다. 서부 개척자의 전설이 된 S&W의 총도 있습니다. 당시 세계 최대의 권총 생산업체로 미국 전역의 경찰서가 1930년대 S&W .38 구경 리볼버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글록의 등장으로 미국 총기 산업은 재편성됩니다. 뉴욕 경찰이 글록을 사용하자 드라마, 영화에서 형사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글록을 쥐여줍니다. 유명한 검찰 드라마 <로 앤 오더>는 장편 글록 광고라고 비꼴 정도입니다. <글록>에서는 글록 17이 어떻게 미국 심장부 경찰을 공략했는지 그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줍니다. 


17연발을 쏠 수 있는 휴대용 권총의 매력은 투박하게 생겨 못생겼다고 말하는 디자인적 단점을 상쇄합니다. 하지만 대용량 탄창은 범죄 현장에서 너무 많은 사상자를 낳았습니다. 1991년 텍사스 킬린의 한 카페. 22명 사망, 범인은 자살한 일명 킬린 학살 사건에 글록 17이 사용되었습니다. 2003년 사담 후세인이 지하 은신처에서 끌려 나올 때 그는 글록을 소지하고 있었고, 2007년 버지니아공대 조승희 사건 때도, 2008년 노던 일리노이 대학 사건, 2011년 의원 암살 사건 등에 글록이 사용되었습니다.


총기 규제 진영과 총기 옹호론자 간의 대립은 정치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공격용 무기, 대용량 탄창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총기와 탄창 공급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에 시민들의 공포 구매가 높아집니다.


미국 시장 진입 때도 글록은 언론의 자극적 기사로 인해 오히려 공짜 마케팅 이득을 봤듯 이번에도 정치 논쟁으로 인한 이득은 글록사가 얻습니다. 허술한 법안 덕분에 글록의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공격용 무기 금지는 자동총기의 확산을 막으려는 원래 목적과 거리가 멀어졌고, 오히려 글록은 차세대 소형 권총을 만들어내며 대성공에 이릅니다. 2004년에는 10발 탄창 제한도 결국 풀렸습니다.


취미와 생계 수단으로서의 사냥이 쇠퇴해가던 미국 사회에서 새롭고 차별화된 제품으로 승부를 본 글록. 전미총기협회 NRA의 도를 넘은 문화 전쟁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도 글록이 미국 총기 산업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 글록사의 핵심 인물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조용한 엔지니어 출신 가스통 글록이 천만장자가 된 이후 개인적인 변화도 다루고 있긴 하지만, 변호사 야누초의 촌철살인 재능, 과세 부담 최소화의 탁월한 전략가 에베르트의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합니다. 야누초와 에베르트의 결말은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좋진 않았지만, 글록사 내부 스토리 덕분에 기업으로서 글록사가 살아남는 방법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글록의 탄생과 발전의 역사를 통해 미국 사회의 총기 소유와 사용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글록>. 총기 업체는 혼란을 먹고 산다는 말처럼 총기 규제 진영, 정치계의 허점과 복잡한 이익이 얽히고설킨 총기 산업의 이면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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