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카를 찾아서
미치 앨봄 지음, 박산호 옮김 / 살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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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카펫 위에 누워 손가락 장난을 치고 있는 치카. 작년 봄 세상을 떠난 치카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미치 아저씨를 보며 왜 글을 안 쓰고 있냐며 타박하는 치카입니다.


처참했던 아이티 지진을 계기로 아이티의 보육원 운영을 맡게 된 미치 앨봄과 그곳에서 만난 다섯 살 시한부 소녀 치카. 핏줄로 이어지지 않아도 가족이 된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치카를 찾아서 Finding Chika>는 치카가 세상을 떠난 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감정에 복받쳐 있었던 미치 앨봄에게 진정한 애도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치카가 영원히 자신의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치카가 가르쳐준 교훈들을 글로 쓰기 시작하는 미치 앨봄. 너(치카), 나(미치 앨봄), 우리(가족)의 이야기로 반복되는 구성은 미치 앨봄과 아내 재닌이 50대 중반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다섯 살 치카를 돌보며 경험한 기적을 회고록처럼 그려냅니다.


2010년 1월에 태어난 치카는 아이티 지진에서도 살아남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세 살 때 보육원으로 가게 됩니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당찬 모습을 보인 치카는 씩씩하게 보육원 생활을 하지만, DIPG라는 희귀 뇌종양을 앓으며 4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습니다. 장기 생존 확률이 제로이지만, 미치 앨봄은 큰 결심을 합니다. 치료를 위해 치카를 미국으로 데려온 겁니다.


미치와 재닌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없습니다. 젊었을 때 성공을 추구하며 언제나 아이 이야기를 피했다는 저자는 그 시절을 후회합니다. 느긋하게 미루다가 아이를 원했던 시기에는 결국 임신이 되지 않아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된 겁니다. 이제 치카의 법적 보호자가 된 미치 부부는 가슴으로 아이를 품습니다.


20년 전 루게릭 병을 앓으며 죽음이 임박했을 때 드러난 삶의 진실을 가르쳐 줬던 모리 슈워츠 교수를 떠올리는 미치. 돌아가실 때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모리 교수를 만나며 마지막 수업을 들었던 그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책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보여줬습니다.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인가"에 대한 대답이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은 치카의 절망적인 병 앞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생존자가 0명인 희귀 뇌종양은 치료를 한다 해도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거라 치료를 선택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의사 앞에서 그는 적극적 치료를 강구합니다.


화가 날 때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려 외면하면서 고집스럽게 고개를 푹 숙이곤 했지만 그 표정마저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던 치카. 시시때때로 "이거 봐요"라는 말로 세상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호기심 넘치는 다섯 살 아이와의 생활은 예전에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던 방식에서 시간을 지극히 소중하게 여기는 방식의 삶으로 바뀌게 했습니다. 미치의 삶의 속도가 치카의 속도에 맞춰집니다. 뭔가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사랑을 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키우다 보면 사소한 문제로도 부부간의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치료를 두고 서로 잘못된 결정을 내릴까 봐 두려웠던 겁니다. 방사선 치료는 물론이고 실험적 치료를 받으러 독일까지 가서 힘든 치료를 이어가는 과정에서도 어린 영혼에만 있는 독특한 강인함을 보여준 아이. 큰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투덜대는 법이 없었던 치카 덕분에 최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려고 애쓴 미치 부부의 노력이 깊은 감동을 안깁니다.


치카가 더 이상 혼자 걸을 수 없게 되자 미치 앨봄이 안고 다니는 나날들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안고 다니는 것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나타낸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노력이 우리의 유산이다."라며 아이를 안고 다니는 일이 미치가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이었다고 회고하는 장면은 내 아이를 안고 다녔던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되돌아보게 해 가슴이 저릿저릿 해지더라고요.


4개월을 넘기지 못할 거라 했던 아이가 진단받은 지 23개월까지 버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부담"이었다는 19개월간의 미치 부부와 치카가 함께했던 기적의 나날들의 기록 <치카를 찾아서>. "아저씨의 슬픔이 끝나면 돌아올게요."처럼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미치 앨봄은 치카와의 작별을 이룸과 동시에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게 했습니다. 행복하면서도 가슴 아팠던 그 시간들은 일곱 가지 빛나는 기적을 통해 우리에게 따스한 감동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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