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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코리 브렛슈나이더 해설 / 블랙피쉬 / 2021년 8월
평점 :
2021년 9월, 전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타계 1주년입니다. Notorious (악명 높은) RBG라는 별명으로 유명할 만큼 미국 진보 여성의 상징으로 떠오르며 헌법 자유 수호에 앞장선 법조인입니다.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는 판결문, 의견서 등의 기록에서 그가 꿈꾼 희망과 의지를 건져올립니다. 재판에서 이기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감명 깊은 소수 의견을 내며 왜 잘못되었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국 전체에 여성 법학과 교수가 20명도 안 되던 당시, 긴즈버그 역시 남성 교수보다 낮은 연봉을 받으며 부당한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헌법 내 성차별이 흔했던 시절을 관통한 긴즈버그. 전면에 나서는 운동가는 아니었지만, 법조인으로서 공헌합니다. 성평등에 대한 견해를 헌법 해석과 판결에 반영합니다. 헌법 해석시 어떻게 노력했는지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긴즈버그는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꾸준히 의견을 개진하며 법적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회적, 문화적, 법적 성차별이 만연한 시대에 성차별도 인종차별처럼 임의의 불평등한 처우임을 증명합니다.
ACLU(미국시민자유연맹) 변호사들과 함께 여성 인권 사업을 추진하며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항소인 의견서에 긴즈버그의 목소리가 담긴 1971년 리드 대 리드 사건은 그 시대의 차별을 어떻게 정의하고, 평등을 위해 어떻게 목소리를 높였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은 남성이 여성보다 유산 집행인으로 더 적합하다는 사법적 판단에 대한 항소 재판이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살던 엄마가 아들이 사망하자 자신이 재산 집행인이 되지 못하고, 전 남편이 아들의 재산 집행인이 된 사건입니다. 뿌리 깊은 남성 선호 체제를 보여주는 사례지요. 미국은 주 법이 저마다 있는데 젠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긴즈버그는 '어떤 주 정부도 관할구역 내 사람에게 동등한 법의 보호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수정 헌법 14조 평등 보호 조항을 이용합니다. '남자'가 아닌 '사람'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인종차별에 적용되었던 것을 확대한 겁니다.
1996년 미국 대 버지니아주 재판도 긴즈버그가 세운 큰 공적 중 하나입니다. 여성에게도 사관학교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내용의 소송이었습니다. 성별에 근거해 권리나 기회를 박탈하는 공적 행위를 비판하며 "남녀 간의 본질적 차이는 존중받을 요소지 어느 쪽이든 폄하당하거나 기회를 제한받을 요소가 아니다."라고 판결문에 명시합니다.
1972년 스트럭 대 국방부의 재판은 임신 중지권 재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공군 직업군인인 대위의 임신이 즉각적인 제대 명령으로 이어진 겁니다. 커리어를 이어가려면 여성은 아이를 갖지 말아야 하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임신 중지 사안을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변호한 긴즈버그의 주장은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겠지만, 당시엔 큰 주목을 끈 사건이 됩니다.
"여성의 위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새장일 때가 많다. 우리는 성별 분류가 의심스러운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이후 1973년 로 대 웨이드 재판은 프라이버시 권리에 근거해 임신 3개월 이내에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확립하게 했습니다. 이 재판과 관련해서는 다큐멘터리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2007년 곤잘러스 대 카하트 재판이 부분 출산 임신 중지 금지법을 지지하며 긴즈버그는 이전 판례를 무시하는 이 결과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본인은 대법원 입장에 반대한다."며 소수의견을 내놓은 겁니다. 임신 중지 권리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글로 남은 긴즈버그의 소수의견으로 유명합니다.
젠더 평등에 집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종식시키는 데만 집중한 건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관한 재판에서는 국가가 장애인을 과도하게 시설 격리하는 차별을 지적하기도 했고, 백인보다 월등히 적은 숫자로 소방관에 채용되는 소수 인종의 현실을 짚어주기도 합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대법원장과 8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긴즈버그는 여성으로서는 샌드라 데이 오코너 이후 두 번째로 임명된 대법관이었습니다. 모든 판결이 긴즈버그의 희망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다수 의견에 반대 의견을 제기하는 소수 의견을 내놓은 긴즈버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세요. 긴즈버그의 신념과 원칙은 언제나 인간의 보편적 평등에 기반합니다. 소수 의견을 내놓으며 패배한 와중에도 세상을 바꾼 사례가 많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긴즈버그의 견해를 받아들여 국회에서 공정 임금법이 통과한 사건처럼 말이지요.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임신 출산의 자유, 선거권과 시민권에 대한 자유와 평등과 관련한 13개 사건의 기록을 담은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40년의 세월이 담겼습니다. 젠더에 근거한 차별이 위헌임을 법정과 사회에 알리고 설득하며 호소한 긴즈버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아이러니에 서글픈 마음을 비추기도 하면서 권리란 무엇인지, 온전한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삶에 대한 긴즈버그의 고민이 담겼습니다.
일반인이 판결문을 접하면 딱딱한 느낌은 들 테지만 브라운대학교 교수 코리 브렛슈나이더의 해설이 관련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됩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 긴즈버그가 차곡차곡 쌓아온 판례들은 지금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데에도 큰 울림을 줍니다. 영화, 다큐멘터리로도 그의 삶을 만날 수 있을 만큼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친 긴즈버그. 지배적 견해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발휘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시대를 앞서간 차별 정의의 여정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