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거 봤어? - TV 속 여자들 다시 보기
이자연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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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탐구인 이자연 저자가 들려주는 지혜롭게 콘텐츠를 바라보는 법 <어제 그거 봤어?>. 여자들이 쉽게 심판받고 쉽게 낙오되는 TV 속 세상. 여자들을 은밀하게 소외시키는 문화 구조 속에서 자란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영향받아 왔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자연 저자가 짚어주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뭔가 껄끄러운 게 있어도 정확히 뭣 때문이었는지, 애초에 뭐가 잘못된 건지 인식조차 못 했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드라마, 예능, 영화, 다큐, 애니메이션 등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낱낱이 살펴보는 <어제 그거 봤어?>. 즐겨보던 프로그램도 등장하고, 소문만 듣던 콘텐츠도 거론되면서 추억을 되살리는 시간이 되기도 했어요.


<하이킥> 전 시즌을 아울러 학생 신분의 두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여성 인물에게는 책상이 없었다?! 일기를 쓰거나 전의에 불타올라 공부를 할 때 여자들은 화장대에 앉았습니다. 심지어 국어 선생님이었던 인물에게도 책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반면 남자는 백수여도 책상을 안겨줬습니다. 책상의 부재. 버지니아 울프가 그토록 자기만의 방을 원한다며 외쳤건만.


여자라면 당연히 꾸미길 좋아할 거라는 믿음과 통념이 TV 안에 살아남은 전형적인 상황임을 짚어줍니다. 학습, 사유, 생각, 발전, 상상 등이 담긴 책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책상 외에 여성 인물에겐 또 무엇을 주지 않았을까요. 그 존재 여부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어린이 전용 채널도 다를 바 없습니다. 남자아이는 역량 증진을 목표로 삼으면서 유독 여자아이에게는 아름다운 여자로 변신하는 걸 당연시 여기는 풍조를 흔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진짜 나다움을 찾는다는 성장 드라마 콘텐츠에서 쉽게 볼 수 있죠.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겠다는 다짐으로 끝나도 그 과정에서 욕망, 소망, 꿈의 대상이 남자와 여자와 다르게 묘사된다는 것에 의문을 품습니다.


직장 생활을 묘사할 때도 왜곡된 구조는 여전합니다. 남초 직군의 대립 구도는 성과를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지만, 여초 사회 균열은 인성 부족을 내세웁니다. 여성 래퍼 리그 프로그램 심사위원은 모두 남자이고, 낙태죄 위헌 여부 발표하던 방송에서 남자 셋이 토론합니다. 여자들의 실력 탓을 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없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 거겠지."


남성 주인공의 구원을 받는 민폐 캐릭터로서의 여성,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방식, 뻔한 악녀상 등은 진부합니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이미지는 과연 현실 속 여성과 얼마나 차이 날까요. 다행히 요즘은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경향이 많아졌습니다. 일단 양적 수준을 높여 여성을 비추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다 보면 점차 질적 수준에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여정에는 이자연 저자처럼 지혜롭게 콘텐츠를 바라보는 눈이 많이 필요합니다.


<어제 그거 봤어?>는 여성들의 정신적 자립을 방해하는 요소, 무의식적으로 흡수하기만 했던 부분들을 조목조목 짚어줍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릇된 여성상을 보여준 콘텐츠를 비판하는 글만 담겼는 줄 알았는데, 여성 캐릭터를 인상 깊게 소화한 잘 만들어진 작품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육아 콘텐츠와 현실 속 육아의 차이를 짚어볼 줄 알아야 하고, 여성 피해자의 아픔을 두고 반성 몇 마디로 끝내버리고 새 출발하는 콘텐츠의 문제를 짚어내야 합니다. 여자 악녀는 시기와 질투가 원인이 되어 흑화하는 진부하고 허술히 다뤄진 여성 캐릭터의 다양성 부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주제로 목소리를 내고 비판하면 쓸데없이 예민해 보이는 걸까요. 이자연 저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고백합니다. 가상의 남자로 SNS 계정을 만들어 활동해봤는데, 예상대로 아주 쉽게 이기더라고 합니다. "나도 같은 남자지만..."으로 시작하는 글을 남겼을 때 용기있게 비판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느니, 멋지다느니 칭찬이 따르더라고 합니다. 반면 여자 이자연으로 활동하면 페미 정신병이란 말을 듣기 일쑤였습니다.


저자는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질문을 던집니다. 무비판적으로 흡수할 때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세대를 이어갑니다. 굴레를 끊어내려면 시청자가 눈을 떠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무심코 내 사고방식과 삶에 자리 잡아 당연시 여기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일깨우는 문화비평에세이 <어제 그거 봤어?>.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도 꼭 읽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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