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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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진가가 평소처럼 사진을 위한 여행을 떠난 어느 날, 인도 델리 레드 포트가 우리 독립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우리 역사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날을 기점으로 그의 관점이 바뀝니다. 결국 전 세계에 산재한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아다니는 여정을 하게 됩니다.


김동우 작가가 2014년에 출간한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를 읽으며 여행작가로서만 알고 있던 저는 이 책의 저자 소개란을 읽기 전까지는 동일 작가인 줄 상상도 못했어요. 그만큼 분위기가 달랐거든요. 너무나도 의미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그의 행보, 응원합니다.


김동우 사진가는 2017년 인도를 시작으로 멕시코, 쿠바, 미국, 네덜란드,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 등 10개국을 돌아다니며 고려인, 꼬레아노라고 칭하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마주한 풍경은 공空이었다고 합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는 공간 말입니다. 그동안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역사의 실체를 마주한 작가의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담아낸 <뭉우리돌의 바다>. 기록할 때 비로소 역사가 되는 법. 100년의 외면을 끝내고 민족의 등불이던 현장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인도 무굴제국 최전성기 때 완공한 붉은 사암으로 만든 델리 레드 포트. 이곳은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의 활동지였다고 합니다. 왜 한국광복군이 인도까지 가게 된 걸까요. 일본군과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이던 영국군의 주둔지였던 인도. 일본어와 영어 능력이 뛰어난 최정예 아홉 명이 인도로 파견됩니다. 연합군 편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인정받는 건, 전후 강대국들에게 자주독립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 카드였기에 파견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당시 파견된 대원 중 대장 한지성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는데, 분단이 낳은 비극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빈 성터로 남은 그곳 어디쯤에 대원들이 머물렀을 거라 생각하니 숙연해집니다.


1905년 4월 제물포에서 멕시코로 출항한 상선 한 척. 멕시코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작입니다. 이민자를 모집한 배였지만 실상은 인간시장과 다름없었습니다. 메리다 주변 애니깽(에네켄) 농장으로 흩어진 한인들은 4년간의 계약 노동을 했는데, 노예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고국으로 돌아갈 경비를 모을 수도 없는 임금 수준으로 힘겹게 버텼던 그들. 애니깽 농장의 계약이 끝난 시점엔 경술국치로 나라마저 잃게 되니 고향으로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이 멕시코 이민사를 다룬 소설이라고 하니 이번 기회에 읽어봐야겠습니다.


멕시코시티 외곽에 잠들어 있는 독립운동가 김익주의 묘지에 꽃을 한 송이 한 송이 꽂으며 이민 1세대의 고난을 보듬어봅니다. 과달라하라에는 전 세계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한 도산 안창호가 머물렀던 장소도 있습니다. 현재 멕시코 한인 후손은 7세대까지 내려왔다고 합니다.


2021년은 쿠바 한인 디아스포라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문호 헤밍웨이보다 7년 먼저 이 땅을 밟은 한인들. 그들은 바로 1905년 멕시코로 갔던 한인들 중 애니깽 농장의 계약이 끝나자 쿠바로 넘어온 이들입니다. 외교적으로 교류 없는 쿠바이기에 우리는 쿠바에서의 독립운동사를 뒤늦게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멕시코든 쿠바든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를 설립한 한인들은 독립자금을 마련합니다. 대한인국민회는 일제 통제에서 벗어나 자주적 민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울타리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쿠바 대표 독립운동가로 손꼽히는 임천택은 이역만리 타향에서 민족교육과 독립자금 모금에 힘썼고, 쿠바 한인 2세 중 최초로 대학생이 된 헤로니모 임은 체 게바라의 친구로 쿠바 혁명에 참여했던 인물인데 바로 임천택의 장남이라고 합니다. 현재 쿠바에는 대략 1,100명 정도의 한인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록에만 존재했던 인물을 찾더라도 이제는 누가 누구의 후손인지 사실 찾기 힘든 현실이라니 안타까움만이 가득 남습니다.


"그들은 나와 우리 민족이 살아 있음을 만방에 알리고 매일같이 본인이 누구인지를 자각해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였다." - 책 속에서


하와이 이민은 대한제국이 허가한 처음이자 마지막 집단 이주입니다. 1902년부터 일제가 이민을 금지한 1905년까지 대략 7,300여 명의 한인들이 하와이로 건너갑니다. 역시 넉넉한 형편의 이민이 아닙니다.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처럼 하와이에서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합니다. 우리 정부는 어떤 외교적 보호막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마다 터전을 잡아 굳세게 살아간 한인들. 한인 백만장자도 탄생합니다. 통역관으로 왔던 김형순,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도 이민 세대였습니다. 무관 출신 노백린은 김종림과 함께 한인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합니다. 명칭은 저러해도 실상 임시정부 산하 비행군단 소속으로 활동했고, 우리 공군의 처음이 시작되는 역사적 순간입니다.


김동우 작가가 찍은 비행장 활주로 터 사진은 2020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윌로우스 비행장 터가 공군의 뿌리인데 이렇게 관리해도 되냐'는 질의에 참고 사진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아다니면서 작가는 독립기념관 국외독립운동 사적지 정보가 너무나도 잘못된 게 많다는 걸 깨닫습니다. 제대로 찾아갈 수가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고 합니다. 소홀한 사적지 관리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 책에서도 내내 만날 수 있습니다.


"망각과 무관심이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이토록 무서운 결과를 만든다.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이 쌓여 그렇게 우리의 기억과 역사는 지워진다." - 책 속에서


타임스퀘어에서 두 블럭 거리에 우리 독립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장소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맨해튼 타운홀에서 3.1혁명 2주년 기념행사가 열렸을 때 무려 1,300여 명의 한인과 미국인들이 모여 만세를 삼창하며 잃어버린 나라의 독립을 염원했습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 모델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황기환의 묘소도 뒤늦게서야 뉴욕에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뭉우리돌의 바다>를 읽다 보면 인물이 나오는 사진들은 유난히 특별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셔터를 길게 열어 찰칵하기 전 인물을 나오게 하면, 한 장의 사진 안에 그가 있던 장소와 그가 사라져 버린 공간이 하나가 되는 사진이 탄생합니다. 상이 흐려지며 두 개의 이야기가 중첩되는 겁니다. 잔상과도 같은 효과를 주는 독특한 인물 사진. 희미해진 역사에 대한 이미지가 바로 이러하지 않을까요.


현장에서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빛을 찾고, 가지각색 현장 특성을 표현하며 이처럼 독특한 인물 촬영까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의 사진만으로도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런 거다. 있는 대로 담아내는 것, 멋 부리지 않고 또박또박 정직하게 쌓아놓는 것,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것, 거기에 약간의 자기 생각을 담아내는 것. 그럼 모든 걸 소멸시키는 시간에 맞서 기록된 모든 걸 영원으로 이끌 수 있다. 아카이빙은 그런 거다." - 책 속에서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이라고 합니다. <백범일지>에 독립운동 정신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김구가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는 일본 순사의 말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라고 답한 일화처럼 세계 곳곳에 뭉우리돌처럼 박혀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을 기리며 지은 제목이 바로 <뭉우리돌의 바다>입니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ep.67 남겨진 이들의 역사 편에 출연하기도 했고, <몽우리돌을 찾아서(사진집)>, <세계에 남겨진 독립운동의 현장> 등으로 국가보훈처 보훈문화상, 다큐멘터리 온빛사진상 수상 이력을 가진 김동우 작가. 이번 책에서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을 다뤘다면 이후엔 유라시아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계속 정리해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독립운동사에서 희미해진 시간에 묻힌 국외독립운동가들을 찾는 여정은 읽는 내내 울컥한 마음을 안겨줍니다. '늦어, 미안합니다.'란 자책을 한 김동우 작가처럼 알려고 하지 않았던 역사의 빈칸을 이제는 채워야 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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