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소녀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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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극찬했다고 해서 눈여겨봤는데 왜 극찬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겠더라고요. 스티븐 킹 특유의 시니컬한 감각을 엿볼 수 있었어요. 꽤 괜찮은 작가를 지금에라도 발견한 기분이라 만족스럽습니다.


​한여름에 읽기 좋은 으스스한 스릴감을 선사하는 <불타는 소녀들>. <타임스>가 선정한 2021년 최고의 범죄소설이라는 문구에 (올해는 스릴러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서 신작 스릴러들의 동태를 파악하지 못해 반박도 힘들지만) 공감은 될 만큼 흡인력 있는 스토리텔링이 매력적입니다.


C. J. 튜더의 데뷔작 <초크맨>이 화제가 된 후 요즘 주목받는 스릴러 작가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마침 최근에 읽은 책에서 메리 여왕의 신교도 박해와 관련한 역사 이야기를 접한 터라 버닝 걸스를 소재로 한 <불타는 소녀들>이 제 관심을 더 끌어들여 흥미롭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어요.


500년 전 메리 여왕의 신교도 박해로 화형 당한 여덟 명의 주민을 기념하기 위해 나뭇가지로 만든 인형을 기념일에 불태우는 전통을 가진 채플 크로프트 마을. 당시 두 명의 어린 여자아이가 교회에 숨었다가 밀고되어 결국 순교자에 포함되었는데, 이후 여자아이들의 혼령이 보이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여자아이들의 혼령을 본 사람이 나타납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시골 교회로 좌천된 신부 잭 브룩스와 그의 딸 플로입니다. 열다섯 살 딸을 홀로 키우는 잭은 첫날엔 피범벅이 된 마을 아이를 마주한 데다가 전임 신부가 교회에서 자살했다는 폭탄 같은 소식을 접합니다. 거기에 탄내 나는 어린아이의 뒷모습을 보기도 하고, 딸 플로 역시 불길에 휩싸인 어린 여자아이를 목격하면서 정신없는 한 주를 보냅니다. 뭔가 사악한 악령이 스멀스멀 다가오는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 초반부입니다.


평범한 마을 같아 보이지만 한 번씩 대형 사고가 터진 마을. 500년 전엔 순교자 사건이, 30년 전엔 실종된 두 명의 소녀와 미심쩍게 사라진 부사제 사건도 있습니다. 두 소녀의 실종 사건은 단순 가출로 판단하며 흐지부지되었고, 당시 함께 사라진 부사제의 행방 역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힙니다.


이 마을엔 순교자를 조상으로 둔 후손 집안이 마을의 유지로 살고 있고, 30년 전 사건에 얽힌 사람들도 여전히 마을에 있습니다. 저마다 어떤 비밀과 진실을 갖고 있는지 조금씩 드러나게 하는 <불타는 소녀들>. 작은 마을이라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런데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14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되어 누군가를 찾아가는 의문의 남자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왠지 섬뜩합니다. 엄청난 집착을 보이는 듯한 그의 사고방식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주인공 잭 신부와 관련된 별도의 사건이 진행되는 방식으로 끌어나가는 구성은 주 사건에서 잠깐 환기시키는 효과를 톡톡히 줍니다. 마을의 사건과는 완전 별개의 사건 같아 보이면서도 교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이 있어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30년 전 실종된 두 소녀의 시점으로 진행하는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그날의 진실이 무엇인지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닌 독자에게만 보여주는 방식이라 쫄깃합니다.


신교도 박해의 역사 속 희생된 여성들, 10대 소녀들의 실종, '바람직하지 못한' 여성의 행동을 마귀에 들린 탓으로 돌리며 하느님이라는 이름 아래 행한 구마의식 등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축으로 삼은 <불타는 소녀들>. 그 와중에 마을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소설에서 무기가 등장하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 떡밥 회수는 이만하면 잘 된 편이고, 반전의 충격이 꽤 오래 남네요. 의문의 남자 이야기에서 등장했던 (읽는 중엔 신경 쓰지 않았던) 문장이 리뷰 쓰는 중에 갑자기 생각났는데, 반전과의 연결고리가 더 단단해져 사건의 결말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한 번 더 읽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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