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역사 3 - 군상(群像):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 땅의 역사 3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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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에 새겨진 역사의 명암을 만나는 인문 기행 <땅의 역사>. 2018년 출간되었던 1권 소인배와 대인들, 2권 치욕의 역사, 명예의 역사에 이어 3권 군상 편이 출간되어 다시 한번 우리 역사의 이모저모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0년 차 여행전문기자 박종인 저자가 들려주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역사의 흔적. 승자들의 역사와 찬란한 역사가 아닌 은폐됐거나 왜곡돼있는 군상들의 민낯에 주목합니다. 땅의 역사 3 군상에서는 비상식적이고 찌질한 사람들과 큰 선을 행했지만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영조 때 폐지했을 정도로 잔혹한 고문과 형벌을 숙종 시절 하룻밤 만에 다 받고 죽은 이가 있었습니다. 의인 박태보입니다. 통제 없는 권력의 야만성이 얼마나 잔혹한지, 권력에 결탁한 이들이 얼마나 비겁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박태보 사건의 진실을 알고 나니,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그의 묘 앞에 핀 분홍색 무릇꽃 사진이 어찌나 뭉클하던지요.


폭군 연산군 시대에도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연산군 폭정에 상반되게 대처한 이들의 행적을 들춰냅니다. 사관이 오죽하면 소인이라는 말을 기록했을 정도로 인조의 비위를 맞춘 공작 정치가 김자점의 이야기도 경악스럽습니다.


소현세자 이야기는 치욕의 병자호란의 역사와 맞물려 더 아릿합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인질을 자청해 청나라로 가게 된 소현세자 부부는 8년의 볼모 생활을 끝으로 귀국했고, 두 달 뒤 돌연 사망, 1년 뒤 강빈은 사약을 받았고, 세 아들은 유배형을 받습니다. 이 짤막한 문장 뒤에 담긴 진실은 무엇일까요.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불안한 정통성을 가진 인조의 콤플렉스는 오랑캐에게 고개 숙인 치욕이 더해져 결국 청의 신임을 얻은 아들마저도 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비공개 구역에 마련된 소현세자의 소박한 무덤 사진이 짠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전쟁에 대처하는 대인배와 소인배의 방법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신미양요에 대해선 역사 시간에 짤막하게 배우고 넘어갔는데 이 책을 읽으며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강화도 광성보 신미순의총은 당시 전몰한 전사들의 무덤입니다. 미국이 퇴각했다고만 알고 있던 신미양요가 사실은 이미 다 파괴하고 난 다음 퇴각했다는 게 진실입니다. 한마디로 참패했던 신미양요입니다. 일각에선 정신승리로 치하하지만 전쟁은 이겨야 이기는 것이라고 저자는 따끔한 한 마디를 합니다. 반면 정신력 승리로 치부하는 이순신의 전투는 정신력 승리가 아니라 객관적인 승리라고 합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운 배 열두 척의 실체를 잘 짚어주고 있습니다.


포수 의병장 김백선의 죽음에 담긴 비밀, 서울 동대문에서 청량리를 연결하는 도로 왕산로의 주인공인 대한제국 의병장 허위의 이야기 등 의병에 대한 이야기도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번쯤 봤던 유명한 의병 사진을 찍은 사람은 조선 독립운동을 세계에 보도한 기자 프레데릭 매켄지입니다. 그의 기록들은 미처 주목하지 않았던 의병들의 진실을 드러나게 합니다.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백성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농기구와 총을 들었던 시대의 이야기는 뭉클합니다. 반면 일본을 도와 의병 절멸에 열중한 관찰사처럼 악을 저지른 인물이 등장할 땐 분한 마음이 솟구칩니다.


익히 알던 독립운동가 외에도 남과 북의 현충 시설에 동시에 안장된 (우리 현충원엔 허묘로 있는) 독립군 양세봉의 이야기도 재조명해야 할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잘못 알려졌거나 은폐되었거나 전혀 몰랐던 이야기가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수두룩하게 쏟아집니다.


빛 뒤의 어둠을 들춰낸 이야기들 속에서 다시는 그런 추함을 저지르지 않도록 눈을 떠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땅의 역사>. 이 책에 소개된 역사의 흔적이 남은 땅은 여행하기 좋은 곳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땅에 남겨진 온전한 진실을 마주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방문 가능한 답사지를 정리해뒀기에 직접 찾아가는 인문 기행서로 읽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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