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탐한 보석의 역사
에이자 레이든 지음, 이가영 옮김 / 다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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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보석 그 자체의 역사를 쓴 책이 아닙니다. 대영제국의 시작, 프랑스혁명의 빌미, 소련의 자금력, 일본의 근대화 등 굵직한 세계사의 중심에는 보석이 있었고, 보석이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주는 책 <세상이 탐한 보석의 역사>.


유명 경매소 하우스 오브 칸에서 경매 담당 부서장으로 일했고 고급 보석 회사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에이자 레이든 저자는 세계사를 바꾼 8가지 보석을 소개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보석은 아름다움을 욕망하고 '갖고 싶다'는 원초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욕망, 소유, 갈망, 탐욕은 개인에서 시작하지만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욕망은 우리의 가치를 정하고 만들어내고 상상하게 합니다. 보석의 가격이 정해지는 방식이 바로 그렇습니다.


아름다움, 크기, 품질로 보석의 가격이 정해지는 게 아니라 철저히 희소성에 따릅니다. 역사상 제일 큰 사기 행각이라고 부르는 1626년 네덜란드인의 맨해튼 섬 구입 사건. 원주인에게 단돈 24달러어치 유리구슬과 단추를 주고 지금은 엄청나게 탐내는 그 땅을 샀습니다.


지금의 가치관에서 생각하면 말이 안 되지만 당시엔 공정한 거래였다는 게 핵심입니다. 당시 구슬은 화폐처럼 취급되었고 서유럽을 제외한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들어 더 가치가 높았다고 합니다. 구슬이 싸다는 통념은 산업화 이후 생긴 것일 뿐이라는 걸 짚어줍니다. 인간이 가치를 어떻게 정하는지, 가치는 상대적임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다이아몬드 역시 거대한 사기극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말로 약혼반지의 대명사가 된 다이아몬드. 보석의 가치는 희소성에 있다고 했는데, 사실 다이아몬드는 희소하지 않다는 반전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다이아몬드 광산이 우후죽순 발견되면서 톤 단위로 채굴하기 시작하자 독점기업 드비어스는 희대의 마케팅에 돌입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싶어 하므로 희귀하다는 착각을 만든 겁니다. 그리고 꼭 필요하다는 환상을 심어줍니다.


에스파냐 제국의 흥망성쇠가 에메랄드에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어마어마한 부를 성전을 치르는 데 쓴 에스파냐는 한순간에 가치 하락된 에메랄드 때문에 빚더미에 안게 됩니다. 초록빛의 에메랄드에 권력자들이 집착하게 된 계기가 클레오파트라에서 시작된 역사도 흥미진진했고, 우리가 현재 쓰는 현대 경제의 기초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된 역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갖고 싶다'는 욕망이 가져오는 파멸에 대한 역사가 이어집니다. 욕망 때문에 생긴 집착이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조종할까요. 프랑스혁명의 빌미가 된 다이아몬드 목걸이에 얽힌 이야기는 욕망과 질투가 어떻게 마리 앙투아네트를 희대의 악녀로 만들어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결코 가지고 싶어 하지 않았던 목걸이 때문에 이용당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진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자매 사이에 벌어진 진주 한 알에 얽힌 탐욕 역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낳았습니다. 메리의 진주보다 더 좋은 진주를 찾기 위해 해적 전투를 용인하며 진주를 모은 엘리자베스. 이 일은 결국 영국 황금기의 발판이 되어줍니다. 엘리자베스의 진주 사랑은 평생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 두 사례는 보석이 상징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다이아몬드로 프랑스 왕정시대 방탕과 타락을 대표하는 인물로 상징화되었고, 엘리자베스는 진주로 처녀성과 성스러움을 표현했습니다.


욕망의 긍정적인 측면도 물론 있습니다. 폭력과 혼란이 아닌 뜻밖의 성과를 내기도 합니다. 진주 양식의 성공은 생명공학 사업의 시작과 기술혁명의 시발탄이 되어 일본 근대화에 큰 영향을 끼쳤고, 여성용 장신구에 불과했던 손목시계는 양손을 자유롭게 써야 했던 군인들에게 유용해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군대를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에메랄드는 아주 멀리 떨어진 대륙판 두 개가 무척 세게 부딪혀야 생기고, 진주는 세균이나 기생충을 내보낼 수 없을 때 생체 물질로 둘러싸버린 결과물입니다. 정체를 알고 나니 진주에 대한 환상은 살짝 깨지지만요. 색깔 있는 돌에 불과한 보석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때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 보여준 <세상이 탐한 보석의 역사>. 보석이 어떻게 탄생하고 욕망의 대상이 되는지,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만끽한 세계사에 얽힌 보석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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