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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괴물들 - 드라큘라, 앨리스, 슈퍼맨과 그 밖의 문학 친구들
알베르토 망겔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6월
평점 :

최고의 독서가 알베르토 망겔 정도 되면 압도적 배경지식 덕분에 책에 대해 이야기할 게 정말 많아지나 봅니다. 고전문학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초점 맞춘 책 <끝내주는 괴물들>을 통해 책을 사랑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한 가지를 새롭게 배워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작가이자 번역자, 편집자, 비평가이며 스스로는 독서가라고 소개하는 알베르토 망겔은 보르헤스와의 인연으로 책과 끊을 수 없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다섯 편의 소설과 스물두 권의 문학 선집, 스무 권의 논픽션을 출간하며 문학, 영화, 예술을 아우르는 전방위 활동을 하는 알베르토 망겔. 국내에서는 메디치상 수상작 <독서의 역사>와 <은유가 된 독자> 등으로 특히 인기 있는 작가입니다.
<끝내주는 괴물들>에는 저자가 직접 뽑은 37명의 괴물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라인업이 좀 황당합니다. 드라큘라, 웬디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건 이해되는데 빨간 모자, 앨리스, 보바리 씨?
괴물 monster는 "경고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인 monere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천재, 괴짜, 특이한 것, 예기치 못한 것, 거의 또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를 의미합니다. 그러고 보니 괴물 신인처럼 대단한 정신력과 우월한 능력을 보일 때 괴물 같은 능력이라고 하듯, 존재감이 뛰어난 인물을 표현할 때 우리는 괴물이라는 단어를 쓰곤 합니다. <끝내주는 괴물들>에서는 바로 이런 괴물들이 소개됩니다.
문학 작품을 통해 독자의 동반자로 선택되는 인물들. 허구의 인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는 듯한 작품 속 캐릭터에 감정 이입합니다. 가상의 인물들에게서 받는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알베르토 망겔 저자는 첫 공포와 사랑을 그림형제 동화에서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사랑, 죽음, 우정, 상실, 감사, 혼란, 고통, 공포, 정체성 등 이 세상의 경험을 배우는 데 가상의 친구들이 도움과 조언을 줬다고 말입니다.
고전 『보바리 부인』의 남편이자 조역인 보바리 씨로부터 그는 무엇을 배웠던 걸까요. 찰스 디킨스조차 자기 첫사랑이라고 말했던 빨간 모자에게서는 어떤 매력이 숨어 있는 걸까요. <끝내주는 괴물들>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주인공부터 조역까지 각양각색 인물들이 등장해 매력을 발산합니다.
내가 바라는 모습 혹은 하지 못하는 금기를 작품 속 캐릭터에게서 발견했을 때 묘한 짜릿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에만 접근한다면 너무 뻔한 리스트로 끝나버립니다. 이미 라인업에서부터 놀라움을 선사한 만큼 알베르토 망겔은 철학적이고 심리적으로 접근하며 캐릭터가 가진 이면의 의미를 밝혀냅니다.
그런데 결국 무척 보편적인 캐릭터로 결론이 난다는 거예요. 쟤 혼자 특이하고 이상한 거야 대신 누구나, 인간이라면 그럴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작품 속 캐릭터는 우리의 모습이자,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를 대변합니다.
깜짝 놀랄만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요. 조선 후기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의 주인공 파계승 성진이 목록에 올랐습니다. 저는 『구운몽』이 꿈의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정도만 알았지 세세한 내용은 몰랐던지라 좀 쇼킹하긴 했어요. 저자는 치정 모험극이라 부를 만큼 육욕적 세계를 그린 작품이면서 성장소설이자 유교, 도교, 불교의 진리를 설파하는 교육소설인 이 오묘한 정체성을 가진 구운몽의 완역본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가장 빵 터진 인물은 사오정입니다. 원숭이 손오공도 아니고 돼지 저팔계도 아닌 수수께끼 같은 인물 사오정. 애니메이션 만화 덕분에 사오정 개그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돈키호테와 닮은 점이 있다는 사오정의 새로운 면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재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하이디 대신 하이디의 할아버지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고, 전혀 몰랐던 인물인데 이 책을 읽으며 관심 가진 인물도 많아졌습니다.
캐릭터에 집중한 리뷰를 쓴다면 이런 방식으로 나타낼 수 있겠구나 싶은 책입니다. 물론 이만한 수준이 되려면 알베르토 망겔처럼 문학, 종교, 신화, 대중문화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배경지식이 가득해야 멋진 해석이 나올 텐데 말이지요. 캐릭터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 <끝내주는 괴물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