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를 생각하는 걷기 - 함부르크에서 로마까지, 산책하듯 내 몸과 여행하다
울리 하우저 지음, 박지희 옮김 / 두시의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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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명 언론지 <슈테른> 30년 경력 저널리스트 울리 하우저의 걷기 단상 <걷기를 생각하는 걷기>. 함부르크에서 로마까지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3개국을 100일 동안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특별한 계획도 없이 작은 배낭을 멘 채!


언젠가 여든다섯 살 노인이 "만약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더 자주 맨발로 땅을 밟고 다닐 거라고, 더 많이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겠다고" 한 말 때문에 이런 용기를 내어 걸어보기로 결심한 울리 하우저. 무거운 등산화를 신고 걷기도, 맨발에 샌들까지.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도 어슬렁어슬렁 걸어보기도 하면서 어쨌든 두 발로 약 2,000 킬로미터를 걷는 여정을 펼쳐 보입니다.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해,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 익숙한 것을 버리는 중이었다." - 책 속에서


걷다 보면 평소 자주 지나다니던 도로가 보이기도 합니다. 저 길로 갔으면 벌써 도착했을 텐데 싶은 생각도 들지만 부럽지는 않습니다. 이번 여정은 오롯이 두 발이 이끄는 대로 가는 거니까요. 이 위대한 여정은 시작되었고 첫날밤부터 숲속에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오랜만에 꺼낸 등산화를 신고 간단한 옷과 휴대폰, 충전기만 챙긴 작은 배낭에 그래도 침낭은 잘 챙겨갔나 봅니다.


숲속의 아침은 서늘하고 맑은 공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저도 아침의 숲을 사랑합니다. 휴양림에 가면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고요한 숲을 만끽하는 걸 좋아합니다. 어느 정도 숲의 냄새를 맡고 난 후엔 끊을 수 없는 믹스커피를 손에 들고, 또 한참을 숲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울리 하우저 저자가 숲에서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게 됩니다. 고요한 숲속 적막을 깨뜨리며 신나게 달리기도 하면서 숲의 악동이 된 것 마냥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는 저자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유럽 대륙의 모든 길은 로마로 향한다고 하듯 순례자들의 길의 역사를 따라가보기도 하고, 발길 닿는 대로 오솔길을 숲길을 논길을 강가를 따라 걷습니다.


"나는 이 길 위에서 충분한 행복을 차곡차곡 모으기로 했다. 불행한 시간이 오더라도 견뎌낼 수 있는 기쁨의 창고를 만들 생각이었다." - 책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걷는지 유심히 관찰해본 적 있나요. 태어나 걷는 법을 배운 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걸어 다녔지만, 정작 '어떻게' 걷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걷기 여행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움직임을 자세히 느껴보게 됩니다. 현대인은 서 있기 위해 필요한 근육을 가장 덜 쓰고 있다고 합니다. '글루테우스 막시무스'라는 공룡 이름처럼 불리는 엉덩이 근육은 자신의 역할을 할 겨를이 없을 지경입니다.


"내 무릎은 이제야 앉아있는 것 말고도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이제는 내딛는 발에 온전히 내 몸을 맡깁니다. 그러고 보니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든 결정의 순간, 인생에 나를 맡겨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걷다가 조금 지치면 쉬면서 회복하면 된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보행 전문가의 조언도 받아 가며 걷는 여정. 하지만 의족 제작 회사를 방문했다가 양말 지적 당하고, 신발도 수선해야 하고, 걸음걸이도 오른쪽 발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치료용 신발 제작 장인과의 만남에서는 좋은 신발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이야기도 듣습니다. 뼈 26개, 관절 30개, 근육 60개, 100개가 넘는 인대와 200개 이상의 힘줄로 이루어진 발. 평생 앉아만 있던 사람이 걷는다는 것에 대해 진중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걸어서 여행하다 보면 역사가 달리 보인다고 합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나 홀로 사색은 물론이지요. <걷기를 위한 걷기>에서는 수많은 갈래로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부터 신변잡기를 포함해 역사, 환경, 사회 문제 등 알쓸신잡 같은 정보가 쏟아집니다. 걷기는 꽤 효율이 좋은 활동이라 다른 신체 활동에 비해 거의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너지가 머리로 전해지고 뇌가 그것을 고맙게 받아서 사용한다고 말이죠. 산책, 걷기의 효용을 아무리 설토한들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그 감각을 느낄 수 없을 겁니다.


위기의 순간도 간간이 있었지만 큰 탈 없이 여정을 끝마친 저자의 마지막 말은 "아아, 이번 여행은 정말 최고였어."입니다. 걷기를 하는 동안 그는 혼자였으면서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여정에 도움을 줬습니다. 사실 그의 인맥 수준이 놀라울 정도라 부럽더라고요. 그가 간 장소와 만난 사람들을 정리한 마지막 페이지는 그가 걸은 길에 동참하고픈 이들을 위한 소중한 리스트입니다.


오랜 세월 제대로 걷는 법을 잊어버린 몸이 다시 되살아나는 여정을 그린 <걷기를 생각하는 걷기>. 저자처럼 100일간의 도보 여행은 힘들지라도 지금 당장은 평소보다 더 걸어보고 싶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앉아서 일하고 차를 타며 이동하는 현대인들에게 걷기의 설렘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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