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보살님의 특별한 하루 - 아스트랄 개그 크로스오버 단편집
정재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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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 개그 좋아하는 독자라면 취향저격인 단편집 <맥아더 보살님의 특별한 하루>. 황금가지 브릿G의 프로젝트는 언제나 펀펀한 재미를 안겨주네요. 개그에 진심인 11명의 작가들이 모인 이번 책도 평범한 소재도 기상천외한 전개로 뒤틀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들로 가득합니다.


피식거리는 웃음을 유발하거나 헐~ 하며 어이가 도망가게 할만한 상상력에 읽는 맛이 좋은 단편집 <맥아더 보살님의 특별한 하루>. 표제작이 된 작품이 중간에 배치되어 있었지만 가장 먼저 읽어봤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퍼뜩 이해할 수 없었던 맥아더 보살. 아침 공양으로 맥모닝 세트를 바치는 맥아더 장군 신령님을 모시는 보살이 등장하면서 깔깔 웃음 터지게 합니다. 성조기 별 모양의 향불 연기를 세심히 만드는 보살님. 그런데 오늘 일진이 좀...


신내림이 온 것 같다며 찾아온 아가씨. 그 존재는 바로 그레이트 올드 원이라는데. (순간 응? 익숙한 단어인데? 싶었더랬죠.) 생긴 건 문어머리같이 생겨서 숙회 삶아먹으면 딱 좋은 상을 가진 그 존재는 전 세계에 딱 세 권이 있다는 네크로노미콘을 읽고 감상문을 써라는 숙제까지 내줬다며 도움을 요청하러 맥아더 보살을 찾아왔습니다. (네크로노미콘이라니! 이것은 그 유명한 러브크래프트 작가의 허구의 책이 아닌가!) 그 암흑의 존재는 바로 크툴루였습니다. 러브크래프트 작가와 그 덕후들이 만든 가상의 크툴루 신화 말이지요. <맥아더 보살님의 특별한 하루>는 수많은 서브컬처를 낳은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을 가져온 패러디 작품이었던 겁니다. 아쉽게도 러브크래프트를 모른다면 빵 터지는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지만요.


맥아더 보살님 외에도 나머지 열 편의 단편들의 개그 퀄리티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 편 한 편 어쩜 그렇게 장르파괴적인 병맛 개그를 선보이는지요. 그 누구도 들어간 적 없으면서도 '창고'로 불리는 그곳. 어느 날 창고 정리를 맡게 된 주인공은 빡치면서도 은근 설레는데. 드디어 무수한 추측만 난무했던 창고 안을 보겠구나 싶었지요. 과연 창고 안에는 어떤 특별한 게 있을까요. 직장인의 애환이 촉촉이 스며든 정재환 작가의 <창고>입니다.


"나는 오징어요." 생물학적 오징어를 닮은 사람과 소개팅을 하게 된 주인공. 황당한 주장을 하는 오징어남과의 주고받는 대화 속에 싹트는 구수꼬랑한 오징어 향기가 지금도 나는 듯합니다. 오징어 씹으며 읽기 딱 좋은 이야기, 한고요 작가의 <오징어를 위하여>.


<임여사의 수명 연장기>는 정말 최애 소설이었어요. 오늘 데려갈(!) 여자 뒤에 서 있는 저승사자. 아직 5분이 남아있어 여자가 작업 중인 모니터 화면을 보다가 깜짝 놀라는데. 바로 저승사자들이 무척 좋아하는 웹소설 다음 회차였던 것! 세상에나 작가였다니, 작품 완결도 못하고 데려갈 뻔했다니. 이미 명이 다한 작가를 살리기 위한 저승사자의 고군분투기, 넘 재밌었어요.


<죽음에 이르는 병, 발기부전! 그대로 놔두시겠습니까?>도 무척 좋았는데요. 깊은 밤 여자 혼자 사는 월세방에 난데없이 나타난 의문의 남자. 발기부전의 요정이라는데 ㅋㅋ. 아니, 여자한테 와서 흡연은 발기부전증 개선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이 요정의 정체도 궁금하고, 결말도 무척 궁금해지더라고요. 청년의 애환을 이토록 아스트랄적으로 표현한 방식이 맘에 쏙 들었습니다.


"하나된 열정"이라는 문구, 익숙하죠. 평창 동계올림픽 슬로건이었죠. 알바인생 주인공이 홍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는 기묘한 열정을 그려낸 <당신이 평창입니다>도 상상력이 탁월했어요. 마그네슘 영양제를 먹고 마그네슘워먼이 된 주인공이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 <생매장 여관의 기이>. 정도경 작가가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애쓰는 활동을 하고 있기에 이 작품에도 장애인 차별 철폐 및 다양성 존중에 대한 주제가 멋들어지게 담겨 있습니다.


필명과 제목이 어쩜 이리 찰떡 조합인지. 사피엔스 작가의 <You are what you eat>도 황홀하게 재밌었는데요. 야근 후 퇴근길에 편의점에서 맥반석 계란 세 팩을 사 와서 까먹은 다음날, 닭으로 변한 주인공. 다행히(?) 자기만 변한 게 아니라 지구인 대부분이 변했습니다. 그들이 먹은 동물로 변한 겁니다. '내가 먹은 것이 곧 나'라는 주제를 이렇게 변형시키다니,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어요. 결말의 반전도 엄지 척이에요.


<무한마계지하던전>은 동생 패딩에 십자가 모양으로 오바로크를 친 주인공이 졸지에 용자가 되어 세계를 구원하는 신세가 된 요절복통 이야기입니다. 제 개그 취향엔 안 맞았지만 용자에 대한 관념을 뒤틀어버린 전개가 흥미진진합니다.


신좀비 세계관을 선보인 <살아 있는 조상님들의 밤>은 기발한 상상력에 배꼽 잡았어요. 인류 최후의 도피처에 간신히 모인 생존자들 중 한 명인 주인공이 이렇게 된 원인을 짚어보며 과거 회상을 합니다. 주인공은 제사 없애기 운동본부에서 활동하며 결국 제사를 없애는데 한몫했던 인물입니다. 제사를 없애자 죽은 조상님들이 되살아나버리는데... 기존 좀비 세계관과는 또 다른 전개 방식이 신선했어요.


<목탁 솔로>는 간지 쩌는 드러머가 되고 싶은 섬 소년의 성장기입니다. 극락의 힘이 깃든 목탁 비트를 내면서도 불가에 귀의하고 싶지 않다는 섬 소년에게 너는 속세에 너무 찌들었다며 나도 싫다는 부처님이라니. 목탁 소리가 치유 음악이 되는 가슴 따스한 여정이 펼쳐집니다.


개연성 따윈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이야기들에 크큭대며 웃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동이 줄어들진 않습니다. 유머 속에 날카로운 주제의식을 담는 게 더 대단하지 않나요. 개그에 진심인 11명의 작가들 덕분에 이 무더운 여름을 조금은 시원하게 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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