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치유하는 부엌 - 삶의 허기를 채우는 평범한 식탁 위 따뜻한 심리학
고명한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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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와 고등어조림, 매슬로와 콩자반, 몽테뉴와 초콜릿, 버트런드 러셀과 밥과 김치. 어떤 관계일까요?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심리학과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원초적으로 필요한 음식을 연결한 <나를 치유하는 부엌>.


생활과 살림, 비움에 관한 철학을 공유하는 네이버 블로그 '본질찾기'의 운영자이자 숙명여대와 고려대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고명한 저자의 책입니다. 전작 <생활의 미학>에서 일상 속 행복을 찾는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고선 느낌이 참 좋았었는데, 이번 책은 더더더 맘에 쏙 들어요.


"잘 먹겠습니다."에 담긴 의미부터 먼저 생각해 봅니다. 이야기와 추억과 깨달음이 쌓여야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되는 말이었음을 저자도 뒤늦게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밥 한 톨을 씹는 건 그 모든 순간을 꼭꼭 곱씹는 것이며, 밥 한 끼를 먹는 건 또 하나의 기억을 쌓아가는 행위"임을 일깨웁니다.


그러고 보니 음식에는 우리의 삶이 스며들어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며칠 전 아이와 외식하러 갔는데 직전부터 삐거덕거리며 투닥대는 바람에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전투적으로 씹어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불편한 기억으로 남기기엔 음식 자체는 너무 좋았거든요. 이후 그 메뉴를 접할 때마다 나쁜 기억이 먼저 떠오를까 봐 그 기억을 덮어버리기 위해 우리는 다음 날 다시 한번 밥집을 찾아갔습니다. 이처럼 음식에는 우리의 삶이 조각조각 얽혀 있습니다.


고명한 저자는 장례식장 육개장 한 그릇에 아이러니한 감정을 경험한 에피소드를 들려줍니다. 상주가 되었을 때 상실감 앞에서 식욕을 잃은 상태에서 육개장에 식욕을 느꼈다고 합니다. 빈속을 따뜻하게 채워준 육개장 한 그릇이 가져온 포만감. 만족감이 들면서도 상주라는 입장에서 죄책감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느낍니다.


이렇게 상반된 감정과 태도가 공존하며 상호 충돌할 때 느끼는 혼란스러움을 양가감정이라고 합니다. 프로이트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본능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본다고 합니다. 흑과 백이 아닌 억누름과 치우침 없는 양가감정의 균형을 잡을 때 우리의 삶은 더 성숙해짐을 알려줍니다. 장례식장은 모두 상반된 것들이 공존하며 서로를 어루만지는 자리였음을 이제는 깨달았다고 합니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분노를 추스르지 못한 날, 감정을 진정시킨 건 매운 음식 대신 초콜릿 한 조각이더라는 에피소드에서는 초콜릿의 맛을 음미하는 과정이 마음을 추스르는 '쉼'을 의미한다는 걸 깨닫습니다.


후회까지 껴안는 성숙함을 안겨준 삼계탕, 불안했던 신혼 시절을 위로한 베이킹, 허영과 정신적 공허감의 늪에서 끌어올린 티라미수 케이크,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애착을 표현하는 집밥 등 저자가 살면서 먹었던 음식들에 깃든 그리운 추억들이 철학적이 심리학적인 해석과 함께 소개됩니다.


불안, 열등감, 분노, 권태, 자존감, 자기실현 등 삶에서 마주하는 위기를 음식과 연결해 치유하는 지혜를 전하는 <나를 치유하는 부엌>. 완벽한 엄마 노릇에 집착하던 것에 이만하면 괜찮은 엄마로 변하기까지 아들의 소울푸드 달걀밥도 일조합니다. 온갖 근사한 요리보다 배고픔에 눈뜬 아침에 엄마가 뚝딱 만들어내는 달걀밥에서 더 큰 만족감과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수긍하게 되지요. 엄마와 아이 사이를 연결하는 강력하고 밀접한 관계인 '애착'을 정의한 심리학자 존 볼비의 심리학과 함께 패러독스와 관련한 음식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삶의 온갖 모순과 역설, 부조화를 심리학자들의 이야기와 일상의 음식을 연결해 설명하는 <나를 치유하는 부엌>. 밥 한 끼가 가진 수많은 의미 가운데 으뜸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 내 삶에 대한 사랑,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요.


부정적인 권태 대신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는 권태의 또 다른 모습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라고 했고, 삶에서 권태감이 찾아왔다는 것은 아무런 사고 없이 행복한 삶이 지속됨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권태를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정신적 풍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결국 무난하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비결은 내적 에너지가 큰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매일 먹는 끼니를 통해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고, 삶이라는 한상차림을 가장 맛있게 음미하도록 돕는 <나를 치유하는 부엌>. 한정수량 굿즈 앤드파인의 천연수세미도 있어 요긴하게 사용 중입니다.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에 도움 되는 천연수세미여서 기분 좋은 설거지로 상쾌하게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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