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종교의 세계사 - 교과서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인류의 사상사
데구치 하루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까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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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세계를 이해하고 나를 알기 위해 고뇌와 번뇌에 빠집니다. 인류의 지적 갈등에서 탄생한 철학과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철학과 종교의 세계사>는 이 둘을 한데 엮어 세계사 흐름 속에서 살펴봅니다. 2020년 일본 비즈니스북 특별상 수상, 2021년 아사히 신문 '리더의 책장'에 선정되어 필수 교양서로 등극한 책입니다.


동서양 대표 사상가와 종교인의 연표가 책 앞뒤에 별도로 정리되어 있고, 본문 중에도 해당 챕터에 등장하는 이들의 연표 정리가 잘 되어있어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게 도와줍니다. 철학적, 종교적 고찰이 세계 최초 인터넷 생명보험을 만드는 데 도움 되었다고 고백한 데구치 하루아키 저자. 인문 경영을 실천한 경영자이면서도 세계사에 탁월한 조예가 있어 전문학자보다 더 쉽게 일반인을 대상으로 재미있고 명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철학과 종교의 세계사>는 두 가지 큰 화두에 집중합니다. 세계는 어떻게 생겨났고 또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며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지금은 인간의 물음에 과학이 답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종교와 철학이 답했습니다. 이 책은 어떤 인물이 어느 시대에 어떤 철학과 종교를 창안했는지 시대순으로 살펴봅니다. 인간이 어떻게 철학과 종교로 세계를 이해했고 인간이 사는 의미를 고찰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1000년 전후 페르시아 땅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가인 조로아스터 탄생과 기원전 624년 그리스 땅에서 가장 오래된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 탄생을 기점으로 기나긴 종교와 철학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생각하는 사고 능력이 생기면서 언어가 생겼고, 정착생활을 하며 시작된 종교. 인류 최초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입니다. 지금도 인도, 중동에서 소수의 신자를 거느린 세계 종교에 엄청난 영향을 준 조로아스터교의 발자취를 따라가봅니다.


우상 숭배 대신 불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고 선악 이원론을 펼친 조로아스터교를 이후 셈족의 일신교가 흡수해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천국과 지옥, 세례 의식이 생겨납니다. 이 일신교는 현재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나저나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조로아스터의 독일어 발음이 차라투스트라라고 하니 니체의 그 유명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인물과 동일 인물인가 싶었는데, 마침 저자가 딱 짚어주고 있네요. 선악 이원론의 원조인 자라투스트라의 이름을 빌려 니체는 영원 회귀 사상을 이야기할 뿐, 사실 내용과 인물 자체는 무관하다고 합니다. 오히려 니체의 사상은 인도 브라만교 경전의 윤회전생 사상과 가깝다고 합니다.


기원전 500년을 전후하여 전 세계적으로 지식의 폭발로 철학적 사고가 널리 퍼집니다.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로고스(말)로 생각하는 행위에 답을 낸 철학자 탈레스. 그리고 세계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보다 자신에 관해 아는지 물었던 소크라테스의 인간 내면으로 향한 철학이 나타납니다. 이후 철학에 다양한 질문들을 던진 플라톤, 온갖 문제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이어집니다. 비슷한 시기 인도와 중국에서도 지식의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이 시대의 인물이 붓다, 마하비라, 공자, 묵자입니다.


<철학과 종교의 세계사>는 단순히 사상의 개념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끼친 시대 배경을 잊지 않고 들려줍니다. 철학과 종교는 탄생부터 발전까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특히 피타고라스 학파는 윤회전생 사상을 믿는 종교 집단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아테나 3대 철학자의 뒤를 이어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에 이르러서는 아카데메이아, 리케이온,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학파를 등장합니다. 이때 중국에서는 지식인 집단인 제자백가의 전성기입니다. 익히 이름 들어온 사상가들 외에도 추연의 음양가에 관한 이야기는 솔깃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눈여겨보진 않았는데 오늘날 사람들의 생활습관이나 연례 행사에까지 침투한 음양오행설의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등한시할 수 없겠더라고요.


철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본 다음엔 본격 종교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기독교와 대승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탄생과 전개를 살펴보는데 신자가 아니어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슬람교 이야기에서는 수니파와 시아파, 테러 문제로 오해를 받은 지하드의 진짜 의미를 짚어주기도 합니다.


이슬람교가 세력 확장하던 중세에는 이슬람 철학도 발전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부분은 전혀 몰랐던 내용인데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네요. 아랍인들의 번역 운동은 그리스 철학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고, 이븐 시나와 이븐 루시드 두 철학자 이야기는 꽤 지분이 높더라고요. 유럽 사상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이슬람 철학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그리고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과정에서 철학과 종교가 남긴 성과를 바탕으로 근대정신의 싹이 돋아난 궤적을 따라가봅니다. 눈도장 찍어야 할 사상가들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근현대 철학으로 오면 이름이 낯선 사상가들이 많아 고대와 중세 철학에 비하면 낯선지라 평소에도 재미가 별로 없었던 게 사실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읽을만했어요. 20세기 대표 철학자를 소쉬르, 후설, 비트겐슈타인, 사르트르, 레비스트로스 5인으로 압축했다는 것도 조금 수월하게 접근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철학과 종교의 세계사>는 철학과 종교의 경계선을 굳이 찾으려 들진 않습니다. 마음의 안식을 주는 종교, 하나의 이론을 믿음으로써 확고하게 살아갈 자신감과 기쁨을 얻는 철학. 마음을 치유해 주는 마약 비슷한 작용은 둘 다 하니까요. 결국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를 찾는 여정입니다.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찾아온 철학과 종교를 시대순으로 살펴본 <철학과 종교의 세계사>. 최근 20년 사이의 최신 사상이론은 없어 아쉽지만 철학과 종교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책입니다. 저자의 생각이 첨가된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장을 툭 던지기보다는 합당한 의문을 내비치는 비판적 사고에 의한 질문들이 이어져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깁니다. 게다가 더 공부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대표 서적도 추천하고 있으니 철학과 종교에 관한 기본 교양서로 만족스러운 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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