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 - 열정적인 합리주의자의 이성 예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처드 도킨스의 책에 '영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다니. 열정적인 합리주의자의 이성 예찬 <영혼이 숨 쉬는 과학>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 저술가 리처드 도킨스의 두 번째 에세이집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매우 종교적인 무신앙인이다."라고 했듯 이 책의 영혼은 유령 같은 영혼이 아니라 과학이 품고 있는 좋은 의미에서의 시적 감수성을 사랑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과학의 경이로움을 나타내는 '영혼'입니다.


에세이, 연설, 신문, 잡지 등에 실린 기사 41편이 수록된 <영혼이 숨 쉬는 과학>. 과학 그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과학의 가치관, 과학의 역사, 과학이 사회에서 하는 역할에 대한 리처드 도킨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논쟁, 미래 예측, 풍자와 유머, 개인적인 슬픔이 담긴 글들이 어우러져 그동안 읽었던 리처드 도킨스의 책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약 30년에 걸친 글들이 모여있지만 낡은 글이 아닌 생생한 느낌이 나는 건 새롭게 덧붙인 주석과 후기 뿐만 아니라 그가 건드린 이슈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지혜로 가득하기 때문일 겁니다. 난해한 과학을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드는 데 헌신하면서도 결코 과학의 수준을 낮추지는 않은 리처드 도킨스. 도킨스의 면면을 보여주는 41편의 글로 만나보세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과학철학에 관한 발언으로 시작합니다. 1997년 옥스퍼드 앰네스티 강연의 글은 자연의 사실을 이용해 어떤 정치나 도덕을 이끌어내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과학의 가치관, 가치관의 과학이 드러납니다. 지조 없는 포퓰리즘 과학을 경계하며 과학이란 무엇이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들려줍니다. 그 이후엔 실행된 과학에 초점을 맞춥니다. 과학적 사실로 확립된 이론이 어떻게 작동하고 확장되는지 다윈의 이론으로 보여줍니다.


시사적인 이슈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빠질 수 없죠. 특히 종교와의 관계에서 말입니다. "내 분야에 대해 발언할 자격이 없다"라는 말처럼 조목조목 짚어가며 당당히 말하는 도킨스의 모습이 대단해 보여서 그의 책에 푹 빠져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저지하려는 행정 시도 앞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교육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즉석에서 한 강연의 글이 실려있습니다. 바로 '앨라배마의 끼워 넣은 문서' 사건입니다. 그야말로 리처드 도킨스의 매력이 제대로 드러나는 글입니다.


현대 문화에 담긴 모순을 짚어주는 에세이에서는 의외의 면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근본주의적 사고방식, 흑백논리, 관료주의, 비인간동물의 고통 방치 등 다른 저서에서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자막이 아니라 더빙을 사용하는 일상적인 짤막한 뉴스 방송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모습도 흥미진진합니다.


시적 감수성이 탁월하다 못해 오히려 오해를 받기 일쑤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와의 일화도 여전히 간간이 등장해 즐거웠습니다. 그러면서 상징적이고 애수를 띤 (오해는 절대 받지 않을) 자연 에세이를 슬쩍 선보이는 리처드 도킨스의 글을 만나는 재미도 있었고요. 아이 공룡 책으로 만난 로버트 매시와의 에피소드도 정말 반가웠어요. 유쾌하고 신랄한 풍자가 담긴 패러디 글도 선보여 리처드 도킨스 특유의 유머 감각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촌철살인 논객의 면모와 따뜻한 사랑애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리처드 도킨스 에세이집 <영혼이 숨 쉬는 과학>. 65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흠칫했지만 리처드 도킨스 팬이라면 소장각입니다. 에세이라고 해서 술술 읽히는 글보다는 쉽게 읽히지는 않는 주제도 있지만 그 어디에서도(자서전보다도 더 다양한 매력!) 만나지 못했던 풍부한 감정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