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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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옹 팬들이라면 스티븐 킹이 필명으로 소설을 냈었다는 사실 아실 텐데요. 그가 만들어낸 가공의 작가 리처드 바크만(Richard Bachman)의 1981년작 소설 <로드워크>가 이번에 새 옷을 입고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리처드 바크만 필명으로 냈던 <롱 워크>는 제가 넘나 애정하는 소설인데 이번 <로드워크>도 묵직한 사회 현실 주제가 담겨 공포의 제왕 킹옹님의 스타일과는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을 앓던 1970년대 시대상을 바탕으로 한 <로드워크>. 20년간 세탁회사에서 성실히 일해온 바튼 조지 도스는 일과 가정 모두 난관에 봉착합니다. 정부의 고속도로 확장 사업으로 공장을 옮겨야 해서 새로운 부지를 서둘러 확정해서 계약해야 했고, 집도 이사해야 할 신세입니다. 하지만 바튼 조지 도스의 마음은 애초에 정해져있습니다. 이곳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건방진 측량사 놈이 '여기로 도로가 지나가야 됩니다'라고 하면 정부는 그 땅 주인에게 편지를 줄기차게 보내죠. '죄송하지만 이곳으로 784번 고속도로 확장선이 통과하게 되니 일 년 내에 이사 나갈 새집을 찾으세요'라면서요."- 로드워크 


바튼 조지 도스의 심리를 따라가는 흥미로운 여정 <로드워크>. 머릿속에는 프레디라고 불리는 의문의 인격이 또 있어 프레디와 조지 간에 대화가 오갑니다. 겉으로는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조지와 달리 내면에서는 스티븐 킹 특유의 욕설이 펼쳐지는 가운데 오히려 조지보다 더 이성적인 충고를 하는 머릿속 프레디의 정체가 밝혀지는 여정도 흥미롭습니다.


한때 좋은 시절을 누린 조지. 소소한 일상이었지만 그 추억들은 조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들입니다. 이사를 가면 낯선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이 되어버린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게다가 뇌종양으로 3년 전에 죽은 어린 아들의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조지에게 이건 그저 단순히 고속도로 확장 공사나 이사가 문제가 아닌 겁니다.


20년 동안 살아온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도로 확장 공사. 회사 부지 계약도 하지 않고 이사 갈 집도 알아보지 않은 결과는 결국 실직과 별거로 이어집니다. 조지는 오로지 도로가 절대 완공되게 놔둘 수 없다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자기 연민에서 자기 파괴로, 인생이 제대로 꼬인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텐데. 조마조마합니다.


<로드워크>는 심란한 조지의 내면을 통해 당시 통화 위기, 인플레이션, 베트남 전쟁, 에너지 위기 같은 문제의 이면을 들춥니다. 에너지를 써라, 쓰지 마라. 에너지를 소모하는 장난감들을 사랑하도록 만들더니 이제는 증오하도록 만드니, 파블로프의 개처럼 훈련받은 개나 다름없다고 말입니다.


고속도로 확장 공사는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철거할 건물을 부수기 위해 크레인에 매달고 휘두르는 쇳덩이를 일컫는 레킹 볼은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움과 괴로움을 증폭시킵니다. 이 집 벽을 무너뜨리고 창문을 산산조각 내고 파편을 바닥에 쏟아놓을 레킹 볼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조지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시도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절망, 증오, 두려움, 분노, 상실감이 뒤섞인 채 망연자실한 조지. 그동안은 어떻게든 버텼지만 이제는 보상금을 받고 집을 나와야 할 시점입니다. 목숨까지 바쳐가며 얻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로드워크>가 보여주는 파국으로 몰아가는 과정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철거 사건 사고를 접할 수 있었기에 낯설지가 않습니다. 바른생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던 조지가 공포와 분노에 먹혀가는 모습이 오히려 공감되기까지 했어요.


그 과정에서 조지의 편은 없습니다. "널 구해줄 배 따위는 오지 않아."라며 스스로도 깨닫습니다. 지키고 싶지만 지킬 수 없다는 사실, 그 깊은 상실감에 연민을 갖게 됩니다. 스티븐 킹의 화끈한 몰아치기 공포는 없지만 현실의 삶이 내포한 고통을 보여주는 색다른 매력을 가진 소설입니다. 영화 「그것」의 무시에티 남매가 각색 및 제작, 영화 「클랜」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의 영화화까지 예정되어 있다니 영상으로 만나는 조지는 어떤 매력을 선보일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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