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 작법
오덕렬 지음 / 풍백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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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얼마나 잘 알고 있나요? 에세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를 테고, 개인적 일상이나 경험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으로 알고 있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1세기 동안 수필의 암흑시대를 겪은 한국 창작수필의 현실입니다. 고전수필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한 결과입니다.


전작 <창작수필을 평하다>를 읽으며 창작수필의 매력에 빠져들었는데 이번엔 현대창작수필의 뿌리를 찾는 여정을 함께 해봅니다. 수필의 문학성 회복에 앞장서는 오덕렬 수필가의 연구 논문 모음집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 작법>은 창작수필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는 책입니다.


갑오개혁 이전의 문학을 고전문학이 부르는데 이 책에는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문수필과 한글수필 중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고전수필 15편이 수록되었습니다. 왜 고전수필을 살펴보는 걸까요. 현대창작수필 작법론이 없으니 에세이 이론에 우리 수필을 꿰맞춰 에세이처럼 쓰게 된 겁니다. 우리의 고전수필론이 부재한 탓에 맥이 끊긴 거죠. 고전수필을 연구해보면 우리가 말하는 에세이와는 다르다는 걸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 작법>에서 명백히 보여줍니다.


고전수필 작법에서 현대수필 창작론을 뽑아내는 과정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롭습니다. 고어가 많지만 해설이 잘 되어 있어 고전수필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한국사 시간에 암기한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지만, 그가 쓴 한문수필 『슬견설』의 매력은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선입견을 버리고 사물의 본질을 올바로 보라는 교훈이 담긴 글인데, 헤겔의 정·반·합 변증법으로 해설하는 시각이 흥미로웠어요.


한글 창제 후 한글로 쓴 고전수필 중 의유당 김씨의 『동명일기』는 여류 수필의 백미로 칭하는 만큼 수필의 맛을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출을 보고 와서 썼으니 시간이 지난 뒤의 기억에 의해 쓴 글입니다.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재구성한 작품은 허구입니다. 아니, 허구라니? 수필에 허구라는 말이 들어가니 의아하지요. 수필의 허구는 소설의 허구와는 다르다고 합니다.


수필의 허구는 소설의 허구적 이야기의 상상적 세계가 아니라 사물과의 교감의 상상적 세계입니다. 허구적 세계는 창작의 세계입니다. 수필도 문학이냐는 소리를 듣는 현실에서 생각과 느낌을 위주로 상상으로 사물과 교감하는 수필은 엄연히 창작수필입니다. 이 부분은 전작 <창작수필을 평하다>에서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조선 기행문의 백미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창작적인 변화의 핵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글입니다. 6개월의 기록인 만큼 일부만 소개되어 있지만, 기행문이되 문학적인 기행문인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줍니다.


다산 정약용의 『수오재기』에서는 배경설명이 흥미진진했어요. 큰 형 정약현이 자신의 집에 붙인 이름이 '수오재'라고 합니다. 『자산어보』를 쓴 정약용의 둘째 형 정약전도 언급되는데 최근 개봉한 영화 덕분에 정약용 집안의 이야기와 글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오덕렬 저자는 원문에 나온 문학적, 상상적, 허구적 표현을 하나씩 짚어주며 창작수필의 본질을 짚어줍니다. 사소한 일상에서 찾는 소재, 비유적 표현, 글의 전개 방식 등 현대수필 작법을 생각하며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짤막한 글이지만 다양한 수사법으로 읽는 맛이 다채롭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갑오개혁 이후 이론적 정체성 없이 한 세기를 보낸 한국 수필. '붓 가는 대로'는 한자어 수필의 뜻풀이에 불과할 뿐 수필의 이론이 아니라는 걸 강조합니다.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 작법>은 고전수필의 맥을 이으려는 고민의 흔적이 담긴 소중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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