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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모험 - 인간과 나무가 걸어온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정
맥스 애덤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영국 고고학자이자 숲 전문가 맥스 애덤스가 역사, 과학, 예술을 넘나들며 나무와 인간이 함께 해온 지적 여정을 그린 인간과 나무의 오래된 미래 <나무의 모험(The Wisdom of Trees)>. 저자는 실제 약 16만 제곱미터 면적의 삼림지를 사들여 숲속에서의 삶을 실현하면서 인간의 가장 오랜 친구이자 스승인 나무의 내력을 파고드는 여정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나무의 모험>에서는 역사 속에서 나무가 어떤 상징으로 활용되었는지, 인류의 문명과 진화에 나무가 기여한 것, 나무의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 숲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 나무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담백한 서사로 자연 에세이의 매력도 듬뿍 뽐내는 책입니다.
살아있으면서도 동물과는 전혀 다른 나무. 인류 문화사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무와 숲은 아낌없이 베풀었습니다. 요즘은 도시숲이라는 이름으로 나무의 존재감이 여전히 돋보이고 있죠. 저자는 우리가 숲의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인간과 늘 공존해온 나무입니다.
2억 7000만 년 정도 된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는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때 폭발지에서 불과 1.6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살아남기도 했습니다. 박테리아에서 진화해 다양한 조건에 대처하며 살아남은 나무. 최근 200만 년 사이에 생겨난 신진 세력들도 꽤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새로운 도전과 경쟁에 적응하면서 다양한 틈새 환경을 차지하는 나무를 보며 다양성의 미로를 탐험하는 자연의 모색에 감탄하게 됩니다.
숲사람으로 살면서 땔감을 마련하는 이야기와 어우러진 숲속의 귀부인 자작나무,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사시사철 기쁨을 주는 마가목의 미덕, 흔한 사과나무에 숨겨진 비밀 등 그 속에서 지혜, 두려움, 전설, 별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은 나무들의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뜻하지 않게 쏠쏠한 팁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낙엽을 말려 책장 사이에 잘 끼워두는 취미를 가졌다면 눈이 반짝. 낙엽의 아름다운 색을 보존하려면 마르기 전에 보습 크림을 발라주거나 글리세린에 담갔다 꺼내면 된다고 합니다.
인간의 부주의, 태만, 탐욕, 편의주의 등으로 나무는 큰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삶과 죽음의 순환 주기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파괴되면 의도치 않은 결과들이 나비효과처럼 들이닥칩니다. 나무를 베어낸 다음 그 자리에 나무를 심지 않으면 생태계에 재난이 닥치는 게 당연한데도 우리는 숲의 가치를 등한시해왔습니다.
숯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는데요. 숯의 효용은 생각 이상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정수 필터나 마스크의 필터에도 숯이 들어가지요. 하지만 얼마나 올바르게 숯을 만드는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싸구려 숯의 대부분은 귀중한 맹그로브나무를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혹은 불법으로 벌목한 것으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사실 숯은 만들기도 쉽고, 충분히 지천에 깔린 나무에서 재료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취미 삼아 숯을 굽는 일은 만족감, 미적 쾌감, 철학적 사색 면에서 으뜸이라고 외칩니다.
"책 한 권을 더 사는 것이 숲을 구하는 길이다." - 나무의 모험
생태계는 작은 변화에도 취약합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숲을 파괴해온 관행은 바뀌어야 합니다. 종이 없는 사무실 같은 개념으로 숲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을 진행하지만 그보다는 종이를 더 많이 소비하라고 권하는 저자입니다. 숲은 유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종이와 성냥을 만들기 위해 조성된 숲에는 베어지는 나무보다 더 많은 나무가 새로 심어진다고 합니다. 나무가 가진 경제적 가치, 나무의 경제학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짚어줍니다.
<나무의 모험>은 숲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월든 호숫가로 향했던 소로도 감상적인 태도 대신 나무와 숲에 대한 굳건한 유대 관계를 형성한 경제적 측면을 강조했습니다. 숲을 더욱 유용하게 활용하며 즐거움과 합리성을 인지하는 태도를 짚어주는 <나무의 모험>은 숲에 활기를 일깨우는 참다운 방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