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 - 가난하다고 왜 철학이 없겠는가?
아무개 지음 / 포르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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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아무개들에게 더 아무개가 전하는 격공감 위로 에세이 <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 영화 베테랑의 명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처럼 찐한 짠내가 뭉글뭉글하면서도 씩씩함이 드러납니다.


필명 '아무개'라며 자신을 소개한 저자는 이력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글에서 은근슬쩍 알게 된 건 40대 엄마이자 아내라는 정도뿐. 아! 금수저는 아니라는 것. 복면가왕처럼 이력보다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글로 다가온 '아무개'씨.


중산층인 줄 알고 살아왔지만 채소나 달걀 가격이 폭등하면 식탁에서 보기 힘들어지더라며 결국 중산층은 아니구나 깨달았다는 아무개 저자의 고백처럼 넉넉하지 않은 형편의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통칭한 '가난'에 대해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에피소드는 뼈 때리는 통찰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좋은 거 살 줄 몰라서 안 사는 게 아닌데. 재질 좋고 예쁘다 싶은 건 왜 그리 비싼지. 이불 하나 고르기 위해 홈쇼핑부터 혼수 전문 이불가게 등 두루 둘러보지만, 안목에 맞는 건 엄두나지 않는 가격이라 결국 고른 건 "으이구, 안목하고는……" 소리를 듣게 만드는 이불이었습니다.


안목은 접어두고 철저히 가성비를 고려한 소비를 해야 하는 현실이라 골랐을 뿐인데 정작 듣는 말은 안목 타령이니, 이 어찌 억울하지 않겠어요. 안목과 돈,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요.


중고시장을 좋아하고 가성비를 확실히 따지는 아무개 씨는 신발도 동네에서 저렴한 걸로 삽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밑창이 날아가 버린 경우도 있었고 어찌나 발뒤꿈치가 아픈지 역시 싸구려여서 그렇다며 앞으로는 안 사야지 결심했답니다. 마침 생일 선물로 고급 구두 상품권이 생겨 백화점에서 새 신발을 사서 신게 되었는데. 그런데 이럴 수가! "역시 아파……" (심지어 더 아파.) 가격 때문이었으면 서글펐을 거라며, 오히려 이 일로 위안을 받았다니 다행(?)입니다.


이처럼 위안 삼을 거리가 생기면 단단히 챙기니 빈자의 정신 승리? 반전이라면 반전인 스토리도 등장합니다. 돈 걱정을 하지 않는 날이 없지만 어른 노릇을 할 땐 제대로 챙깁니다. 양가 부모님께도 잘 챙겨드리고, 가까운 친지에게 소소한 축하 거리가 생기면 언제나 넉넉히 쏩니다. 사실 돈에 치일 때면 가장 먼저 덜 신경 쓰게 되는 게 바로 가까운 가족과 친지 아니던가요. 형편이 어려워서라는 핑계를 만만하게 댈 수 있었을 텐데도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래전의 찌질함과 부끄러운 흑역사도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고.'라며 성장해 온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절대 권력, 절대 반지, 절대 종교인 돈. 돈에 일희일비하는 삶임은 분명하고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돈에 관한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면 덜 휘둘립니다.


"나에게 가난이란, 약간의 불편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 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 


벚꽃도 화려하게 만개한 날은 고작 10여 일뿐이라며 1년 중 고작 10여 일 남짓 좋았던 추억을 먹고 사는 것도 괜찮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로 살아내는 것 아니겠어요. 헛헛한 기분이 드는 날도 있고 욕이 튀어나올 만큼 화나는 날도 있고 다 사는 게 비슷비슷합니다. 가난 때문에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을 갖지 않는 것, 가난하다고 해서 철학이 없을쏘냐며 빈자의 삶을 읊조립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는 고백이 치유의 시작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글이 모여있습니다. 어디에서 삶을 지탱할 힘을 얻고 있는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은 어떤지 엿볼 수 있습니다. 소박한 삶의 철학을 가진 자는 삶의 무게에 좀 짓눌리더라도 압사 당하지는 않는다는걸. 씁쓸한 자조감이 들 때도 있을 법하지만 사실을 인정할 뿐, 자신을 힐난하지 않고 낙천적인 모습으로 귀결되는 것에서 공감하고 위로받을 만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살아있음에 그 자체가 힐링이 되는 삶의 소중함을 짚어주는 아무개 씨의 현실밀착형 에세이. 어쭙잖은 위로 대신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법으로 그 시간을 온전히 혼자 지나야만 한다는 걸 들려줍니다. 대신 너무 오래 아프진 말자고, 같은 자리에 또다시 상처받진 말자고 토닥입니다.


경제적 형편에 짓눌리는 사람, 때때로 드러나는 궁상맞음에 씁쓸해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개 씨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아무개 씨가 내 미래의 모습일 것 같다며 불안한 미래로 고민 많은 청춘들도 가난하지만 씩씩한 저자의 모습에서 얻을 게 분명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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