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이름 - 부모의 뇌를 치유해야 아이의 뇌가 달라진다
도모다 아케미 지음, 김경인 옮김 / 마인더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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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육을 위해 그랬다", "사망에 이를만큼 때리지는 않았다."라는 말은 사그라진 귀한 생명 앞에 핑계일 뿐입니다. 경악과 허탈감을 안겨주는 학대 사망 기사가 유독 눈에 띄는 요즘. 하지만 기사화되지 않고 묻힌 아동학대는 얼마나 많을까요.


소아정신의학과 의사 도모다 아케미 저자는 <부모라는 이름>에서 아동학대로 인한 아이의 뇌 변화와 학대의 가해자인 부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치료법을 소개합니다.


매주 1명 이상의 아이가 학대로 사망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지만, 이것은 극히 일부만 드러난 수치라고 합니다. 학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기기에 신체적 학대 외 심리적 학대는 더욱 많을 겁니다. 우리는 가해자와 경찰에 많은 분노를 표출하지만, 저자는 분노의 감정을 갖는 것만으로 학대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고 말합니다.


어른에게는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의 완력과 지능이 있다고 단언합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끝내 다치게 하는 부모라면 뭐가 문제일까요. 저자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는 부모의 뇌를 치유해야 아이의 뇌가 달라진다는 것을 절감했기에 <부모라는 이름>에서는 아이들과 일상을 보내는 부모의 뇌에 초점을 맞춥니다.


신체적, 성적, 심리적 학대와 방임에 이르기까지 학대 개념은 꽤 폭넓습니다. 하지만 학대라는 용어가 갖는 이미지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외면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아동학대라는 표현보다는 '차일드 멀트리트먼트'를 사용합니다. 피해야 할 자녀 양육이라는 의미입니다. 2016년에 WHO에서 발표한 평가보고서에도 18세 미만 아동의 건강과 생존, 발달과 존엄을 위협하는 행위를 차일드 멀트리트먼트로 표현했습니다.


훈육과 학대의 경계. 참 애매하지요. 사실 멀트리트먼트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가정, 교육환경은 드뭅니다. 학대인지 아닌지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행위로 인해 아이가 상처를 입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소한 멀트리트먼트를 계속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합니다.





성장기 아이의 뇌에 과도한 스트레스가 가해질 때 아이의 뇌 변화와 심신에 표출되는 증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에서는 멀트리트먼트의 종류에 따라 뇌 손상을 입는 부위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처벌로 인해 감정, 사고, 행동을 관장하는 영역인 전두전야가 위축되고, 성적 멀트리트먼트와 가정폭력은 사물 인지와 기억 형성과 관련된 시각야를 위축시킨다고 합니다. 폭언은 언어와 관계있는 청각야를 손상시키고, 유소아기 멀트리트먼트 경험은 기억과 관련된 해마를 위축시킵니다.


이렇게 멀트리트먼트로 뇌 구조에 변화가 생기면 향후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사회적, 정서적, 인지적 장애를 갖게 됩니다. 유아기에 깊은 심리적 트라우마를 그대로 방치해 마음의 병을 가진 채 어른이 되는 겁니다.


문제는 마음의 상처가 대물림된다는 겁니다. 환경과 경험으로 양성되는 양육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부모에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부모가 자식에게 상처 주는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멀트리트먼트라는 사건으로 인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떠한 영향이 심신에 미쳤는가를 인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부모라는 이름>. 학대의 세대 간 대물림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학대의 세대 간 대물림을 끊을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이 정도가 심한 체벌은 피해야 하지만, 훈육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체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의식이 잠재하고 있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체벌은 가속화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살살 때릴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점점 감각이 무뎌져 갔다"는 변명이 고정 멘트가 될 정도입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 전체가 체벌에 대한 의식을 바꿔야 함을 강조합니다. 멀트리트먼트가 아이의 뇌에 미치는 과학적 증거를 다시 한번 떠올려야 합니다. 때리지 않고 소리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 초점 맞춰야 합니다.


<부모라는 이름>은 사회 전반에 걸쳐 공유해야 할 올바른 자녀 양육관을 이야기하며, 최신 뇌 과학을 토대로 부모를 지원하기 위해 기울이고 있는 활동과 연구를 소개합니다. 육아를 힘들어하는 부모에게 아이를 대할 때의 기술과 지식을 갖추게 함으로써 부정적인 감정과 부적절한 방식을 바꾸고 관계를 재구축하는 트레이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정적 연쇄를 끊기 위한 부모지원. 이런 시스템이 정립되어야 부모의 뇌를 긍정적인 상태로 바꾸고 멀트리트먼트를 예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스웨덴은 1979년 세계 최초로 아이에게 어떤 체벌도 심리적 학대로 할 수 없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정부는 법 정비와 함께 대대적인 캠페인도 전개했고, 체벌이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현재 부모가 되어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멀트리트먼트가 세대 간 대물림되듯 좋은 자녀 양육도 세대 간 대물림이 된다는 것이 확인되는 시점입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부모가 자녀를 체벌하는 것을 허용했던 민법 조항이 삭제되면서 친권자의 징계권이 없어졌습니다. 체벌은 폭력이라는 인식, 아이를 대하는 어른의 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사실 기대만큼 안 되고 있는 것 같지만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 멀트리트먼트의 폐해와 마음의 상처를 가능한 한 빠른 단계에서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리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발달장애연구 일인자이자 트라우마 치료의 권위자인 스기야마 도시로와의 대담을 통해 아동심리 임상 현실과 부모와 자녀의 병행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부모도 아이도 빈번히 일으키는 플래시백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부모를 벌하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부모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강조합니다.


<부모라는 이름>은 마음의 상처를 뇌를 통해 시각화하면서 멀트리트먼트가 아이의 뇌에 미치는 영향과 트라우마를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하는 책입니다. 그저 이슈가 된 가해자를 비난하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닌 원인을 짚어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올바른 방향을 고민해 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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