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미술관 - 동서양 미술사에서 발견한 닮은꼴 명화 이야기
전준엽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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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에 비해 동양화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여실히 깨닫게 해준 <데칼코마니 미술관>. 우리 회화와 서양 회화의 짝을 찾아 비교하는 이 책은 동서양의 비교 우위를 주장하는 책이 아닙니다. 같은 주제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우리 미술도 이토록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들이 있다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중견 화가 전준엽 저자의 흥미진진한 시선이 담겼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의 자화상을 살펴보는 것으로 서두를 엽니다. 인본주의가 발달해온 서양에서는 자화상이 많지만, 우리 회화는 산수화부터 떠오르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인물화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왕실과 문중의 사당 등에 봉안돼 비공개되어 우리가 만날 수 없을 뿐입니다.


그나마 우리의 자화상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윤두서의 <관상>입니다. 영화 관상 포스터가 이 작품을 떠올릴 수 있게 닮은꼴로 제작되어 윤두서의 작품이 낯설지 않게 느껴집니다. 자신의 내면을 명료하게 그려냈다고 평가받는 뒤러의 자화상과 나란히 놓고 봐도, 윤두서의 작품은 정말 개성 강한 작품이라는 자부심이 생깁니다.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상징적 존재인 뒤러의 자화상도 낯설지 않은 인상인데, 예수의 모습으로 분장해 작가 의식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도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과 정선 <독서여가>, 렘브란트 <자화상>과 강세황 <자화상>을 소개하면서 표정에서 엿볼 수 있는 감정과 함축적 의미를 설명합니다. 감상할 때의 시선과 포인트를 다루고 있어 처음 그림만 먼저 봤을 때와 설명을 읽고 다시 그림을 보면,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의미를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화상 작품들을 만나고 나니 나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더군요. 하다못해 증명사진을 슬쩍 꺼내봤습니다. 나는 어떤 스토리가 담긴 얼굴인지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철학, 비전, 가치관에 따라 나의 자화상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니 바짝 긴장되네요.





생각, 소리, 꿈같은 이미지도 그림으로 표현하는 화가들. 로댕의 대표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그 자세를 편하게 따라 할 순 없지만 근육미만큼은 일품이죠. 그런데 인류 최고의 조각상이라고 작가가 따로 극찬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우리 국보 제83호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입니다. 로댕의 작품보다 훨씬 자세가 편안해 보면 볼수록 편안해집니다. <모나리자>의 미소를 능가하는 신비한 미소, 유려한 선, 맑고 청아한 이미지를 자아내는 작품입니다. 저는 특별전으로 직접 봤었는데 그저 종교적 의미로만 바라봤던 정도였지만 <데칼코마니 미술관>을 읽으며 시각을 바꿔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전준엽 작가는 예술품이라는 말 대신 불교의 유물로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서양은 종교적 모티브가 된 작품도 예술품인데, 우린 종교적 색채를 띠면 선을 그어버립니다. 특히 미신으로 업신 여기는 토속신앙을 담은 작품, 사당에 모시는 그림들은 비하하기 일쑤입니다. 정병삼 저자의 책 <그림으로 보는 불화 이야기>를 읽었을 때에도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 뺨치는 불화들을 보며 입이 쩍 벌어졌었거든요. 하지만 평소 익숙하게 내뱉을 만큼 자랑할 수 있는 불화 이름 하나조차 알지 못한다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보는 재미를 넘어 풀어내는 재미를 주는 <데칼코마니 미술관>. 신윤복, 김홍도의 작품 정도는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접하기도 해서 낯설진 않았지만, 테마별로 놓고 다시 보니 새롭습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신윤복이 나왔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하는 전준엽 작가의 말에 공감합니다. 풍자와 에로티시즘은 기본이요, 거기에 서정성까지 갖춘 신윤복의 작품은 서양화와 함께 놓고 보면 더 재밌습니다. 김후신의 <대쾌도> 작품도 빵 터질 정도로 역동적인 표정과 율동미가 신선합니다. 술 취한 양반 아재의 리얼한 표정이 대박이랍니다.


카라바조의 <나르시스>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도 참 재미있습니다.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을 둔 신화 스토리를 표현한 <나르시스>를 한참 바라보다가 강희안의 작품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해맑은 한량 모습에 노곤노곤해지는 기분입니다.


동서양 미술사에서 발견한 닮은꼴 명화 이야기 <데칼코마니 미술관>. 우리 작품만 따로 떼놓고 봤다면 느끼지 못했을 텐데, 서양화와 짝을 지어 보여주니 새로운 관점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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