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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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 여성학자인 미국의 노학자 마사 누스바움. 현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우리 시대 만연한 혐오에 대한 주제를 다룬 그의 책들을 기회 되면 몇 권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감명 깊게 읽었던 <말이 칼이 될 때>의 홍성수 교수님의 추천사가 들어간 <타인에 대한 연민>부터 읽어봅니다.


원제는 <두려움의 군주제: 우리의 정치 위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라는 조금은 딱딱한 제목이지만, 한국어 번역판 제목은 훨씬 부드러워 진입 장벽이 낮아보이는 효과를 주네요.


마사 누스바움과 친우 솔 레브모어와의 대화를 다룬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에서 노년의 혐오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하는 바가 많았는데요. 노년기에 대한 혐오는 우리 자신의 두려움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은 바로 그 두려움을 집중적으로 살펴봅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잠식당합니다. 두려움에 굴복하고 그 흐름에 휩쓸리고 회의적 사고를 거부한다면, 외부 집단을 향한 비난 혹은 타자화로 쉽게 전환되어 공격을 띠게 됩니다. 우리와 그들로 나뉘고, 비주류 집단을 희생양 삼아 선과 악의 구조가 됩니다.


증오, 혐오, 분노는 두려움을 먹고 자랍니다. 즉각적인 거부감에서 시작되는 혐오는 특정한 집단에 투사되어 그들을 배척하기 위한 사회적 무기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이런 혐오가 정치와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역사적으로 절대 군주들은 두려움을 이용해 통제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도 이런 일은 만연합니다. 혐오와 분노에 기반한 정치적 호소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처럼 말입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은 2016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밤 느꼈던 무력감을 기반으로 해 탄생한 책입니다.


두려움은 인간을 너무나도 손쉽게 자기중심적으로 되돌려버린다고 합니다. 삶은 원래 어렵고 두려워할 일들도 많습니다. 두려움은 이성적이고 유용한 부분도 존재해 도움이 될 때도 있긴 하지만 두려움으로 인한 오류는 심각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건전한 사고와 협력을 방해할 정도입니다. 무슬림에 대한 두려움처럼 말입니다. 트럼프는 이슬람 전체가 위험의 근원임을 암시하는 발언을 반복했고, 결국 그쪽에서 온 이민자들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두려움은 분노-비난과 결합할 때 수많은 부적절한 행동을 추동합니다. 이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의 부재가 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두려움은 분노의 전제 조건일 뿐만 아니라 분노의 오류에 불을 붙이는 독입니다.


"두려움은 다양한 혐오 낙인을 통해 넓게 가지를 친다." - 타인에 대한 연민 中


타인을 배제하는 감정은 '혐오'입니다. 불합리한 혐오는 많은 사회악의 뿌리입니다. 벌레를 피하는 것 같은 단순한 혐오가 아닙니다. 혐오를 조장하는 신체, 동물성, 변화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 때문에 평등한 시민권을 방해하고 편견으로 인한 범죄까지 유발합니다.


두려움으로 인한 비난과 비슷한 양식을 보이는 건 또 있습니다. 두려움에 바탕한 시기로 인한 여성 혐오입니다. 여성들이 내 삶을 뒤흔든다는 깊은 불안과 분노 때문입니다. 반대로 남성 혐오는 불만으로 인한 분노, 보복에 대한 염원이라고 덧붙입니다.


신체의 취약성과 역겨움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 있는 혐오에 대한 이야기는 트럼프의 문제적 발언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성차별주의와는 또 다릅니다. 그에게는 여성 혐오라는 꼬리표가 더 적절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 외 시기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마사 누스바움은 정당한 원인으로 인한 것이라 할지라도 시기심은 문제가 많다고 말합니다. 시기의 적대적 욕구가 문제라고 말이죠. 분노의 보복적 측면과 비슷합니다. 내가 잘살기 위해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시기심의 악의는 근본적으로 무력감에서 발생하고, 역시 원초적 두려움과 관련이 있습니다.


혐오의 시대에 노철학자가 제시한 해법은 자기 성찰이며 그에 앞서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누군가를 맹렬히 비난하는 일보다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더 어렵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은 우리 내면의 조그마한 감정의 변화로부터 시작됨을 강조합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인류애에 기반한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 작은 발자국을 떼는 힘이 됩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신념과 간디처럼 보복에 대한 환상 없이도 부당함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역사적으로 나타난 사실들입니다. 부당함을 묵인하라는 게 아닙니다. 보복 없는 저항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타인의 인간성을 포용하면서 그들이 저질렀을지 모르는 잘못된 행동만을 반대하는 겁니다.


학교만이 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는 걸 알려줍니다. 사랑이 증오보다 훨씬 강력함을 보여주는 사례도 많습니다. 특히 최소한의 정의가 존재하는 사회라면, 모든 시민이 최소한의 기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역량 접근법이 눈길을 끕니다.


유명인들의 뒤를 좇는 문화와 자기애 넘치는 소셜미디어 덕분에 개인적, 사회적, 제도적 측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걸 하나씩 짚어주는 <타인에 대한 연민>.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 추상적인 것이 아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세심하게 알려주고 있어 책장을 덮고 나서는 조금이나마 후련해지는 감정을 맛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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