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라는 발명 - 1572년에서 1704년 사이에 태어나 오늘의 세계를 만든 과학에 관하여
데이비드 우튼 지음, 정태훈 옮김, 홍성욱 감수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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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은 튀코 브라헤가 신성, 새로운 별을 관찰했던 1572년과 뉴턴이 그의 <광학>을 출간했던 1704년 사이에 발명되었다." - 과학이라는 발명


새로운 과학이 '혁명적'이었음을 강조하는 데이비드 우튼의 임팩트 있는 한 마디로 시작하는 책 <과학이라는 발명>. 우리는 이미 과학혁명이라는 용어에 익숙한 상태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도 농업혁명과 함께 1500년 경 과학혁명이 호모 사피엔스 종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중요시 했을 만큼 과학혁명은 우리 역사의 한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일부에선 과학혁명 같은 것은 없었다고 부인합니다. 단지 합의된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그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데이비드 우튼이 이 책을 썼습니다. 과학혁명은 분명 있었다고 말입니다. <과학이라는 발명>에서 1572년에서 1704년 사이에 이뤄진 과학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입증합니다. 1572년과 1704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그리고 왜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과학의 기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과학혁명이라는 용어가 합의된 완벽한 역사적 사실인 줄 알았는데, 과학혁명을 거부하는 과학자들도 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오히려 주류 과학사학은 과학혁명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며 '점진 발전'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마술은 과학으로, 신화는 사실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은 우리의 철학과 과학으로 인식될 만한 무언가로 대체된 17~18세기 지식의 시대. 여전히 화학은 걸음마 수준이었지만 이때의 변화는 위대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과학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저자는 이것 없이는 산업혁명도, 현대의 기술도 없었을 거라고 단언합니다. 먼저 과학이 찾아왔고, 나중에 기술이 도래했다고 말이죠.


20세기 시점에서 바라본 지식인들의 구성물인 과학혁명. 산업혁명 용어 위에서 생겨났기에 사후 구성인 셈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깨닫고 나서야 과거의 의미들이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게 됩니다. 진보는 멈추지 않는다는 계몽주의 신념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은 과학혁명 그 자체였다고 말입니다.


1000여 페이지 넘는 벽돌책이어서 부담스러운데 내용마저도 장벽이 높으면 어쩌나 걱정스럽긴 했습니다. 대중의 수준을 조금 높게 잡았는지 교양과학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싶은 문장들이긴 합니다. 그 부분이 아쉽긴 한데 그래도 과학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어 한 번쯤 도전해보면 좋을 책입니다.





무엇보다도 데이비드 우튼이 과학혁명을 입증하는 방법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근대과학의 탄생에 기여한 요인들을 하나씩 소개하는데 특히 과학의 언어에 초점 맞췄습니다.


발견, 진보, 사실, 실험, 가설, 이론, 자연법칙, 확률, 증거 등의 용어들이 그 시기에 출현한 겁니다. 그 용어들은 과학적 사고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과학혁명 동안에 발명된 과학 언어들은 현재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발명>은 물리적 도구보다 과학의 언어에 집중합니다. 언어는 정신적 능력을 변화시키는 중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언어적 변화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수정되었다는 결정적 지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시대. 아리스토텔레스는 항시 옳다고 확신하는 철학자들은 그의 주장을 검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겐 새로운 지식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식과 상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발견'은 이전에 아무도 한 적이 없는 경험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다고 시사합니다.


과학의 기초가 되는 개념인 '발견'이라는 명사는 영미에서 1554년에 처음 등장했고, '발견하다'라는 동사는 1553년에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발견의 발견과 함께 베이컨은 진흥, 진보, 달성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발견의 개념 위에 과학의 철학을 세웠습니다. 잇따른 우선권 논쟁 등 근대 과학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과학적 질문에 대해 사고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17세기의 구조물일 뿐입니다. 르네상스기 과학은 본질적으로 고전 과학의 연장이었을 뿐이고요. 무엇이 고대와 근대를 구별하는 걸까요. 바로 fact 사실입니다. 우리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시하기 때문에 그것이 근대적인 발명품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고전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는 사실에 관한 단어가 없다고 해요. 뉴턴의 <광학>에도 이 단어는 없없습니다. 1661년 이후에나 등장합니다.


실험이라는 용어도 살펴볼까요. 예전부터 실험은 수행되었지만 전문가들의 작은 공동체가 중요 포인트로 작용합니다. 같은 기구와 실험 기법을 사용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 간의 측정이 정확성을 인정하는 전문가들의 공동체. 즉, 실험의 재현이 가능해진 때가 과학혁명 시기입니다. 실험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지만 그 지식이 순환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진보의 기회는 없습니다.


보통 코페르니쿠스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출간이 근대 과학의 시작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아니었어요. 당시 우리의 과학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근대 천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더 중요한 사건은 1572년 브라헤의 신성 관측입니다. 그리고 인쇄술 덕분에 빠르게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1608년 망원경과 현미경의 발명도 무척 중요합니다. 특히 망원경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축출합니다. 기구들은 사고를 위한 인공기관이며, 변화의 동인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읽다 보면 표준적인 과학 기구들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의 변화가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과학의 탄생을 전개합니다.


1660년대 갈릴레이 이후 과학을 지칭하는 '근대적' 낱말의 새로운 의미가 등장합니다. 새로운 과학 때문에 마술, 마법에 대한 믿음의 쇠퇴가 일어납니다. 세계의 탈마법화가 이뤄지는 겁니다. 과학혁명은 인쇄술과 망원경의 발명에 의해 가능해졌고, 새로운 과학은 실험과 관찰에 기초하며 이전에 진행되었던 것과 종류가 달랐습니다.


과학혁명의 시작을 추적하는 <과학이라는 발명>.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과학이 언제 어떻게 왜 생겨났는지, 과학이 혁명이 된 이유를 하나씩 보여줍니다. 과학의 기원에 관한 탐구를 지적 도구, 과학의 언어로 보여주는 부분이 특히 흥미진진했어요. 과학혁명의 실재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상기시키며 문화를 넘나드는 언어로서의 과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학혁명은 단지 그것이 너무나 놀랍도록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다."- 과학이라는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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