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내 방 하나 - 손 닿는 만큼 어른이 되어가는 순간들
권성민 지음 / 해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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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어른이 아닌 것처럼, 자취하는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 자립적인 인간은 아닙니다. 아무리 일해도 지상에 방 한 칸 없는 청춘들이 수두룩한 요즘 현실에서는 내 한 몸 누일 공간이 있다면 그나마 자립의 언저리에 다가선 느낌입니다.


<서울에 내 방 하나>는 스스로 생활을 책임지고 해결하는 자취하는 인간으로서 청춘을 보낸 권성민 PD의 홀로서기 여정을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유년 시절부터 애어른 같단 말을 듣곤 했다는 권성민 저자는 꽤 이른 나이에 독립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기숙사 시절부터 집과 멀어지기에 익숙해집니다.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와 스스로 삶을 꾸렸습니다.


저도 스무 살 하숙방부터 시작했지만, 이후 직장을 다니면서까지도 계속 부모님의 도움 아래 지냈는지라 그저 몸만 떨어져 있었을 뿐이었어요. 버지니아 울프도 자기만의 방을 간절히 원하지 않았던가요. 몸 누일 곳이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당시의 저처럼 그저 방 한 칸이 생긴 걸로 다가 아닙니다. 반면 권성민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을 얻기 위해 전투적으로 살았습니다. 그저 능숙한 살림꾼이 아닌 소소한 것까지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말이죠. 고시원과 하숙방에서 이십대를 보내고 MBC 예능 PD로 일하면서부터는 자취와 자립의 경계선을 드디어 넘어섭니다.


깨알 웃음 포인트가 곳곳에 있어요. 언론고시라고 일컬을 만큼 경쟁률이 치열한 방송국 PD에 합격하면서 그 기쁨에 도취한 마음으로 당일 써 내려갔던 합격수기가 지금도 언론 시험 수험생들의 필독 글로 읽힐 만큼 대박 친 에피소드를 들려주는데요. 저도 책 덮고 그 합격수기 찾아 읽으며 감탄 내질렀어요. (스펙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바람직한 자소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필라테스 하는 남자의 운동 에피소드 역시 배꼽 잡으며 읽었답니다. 크로스핏 하다가 토나올 뻔해서 헬스장 PT로 바꿨더니 하필 사이즈 벌크 업에 꽂힌 강사 때문에 또 접고. 혼자 사는 사람이 제일 서러울 때가 아플 때잖아요. 자기 몸은 자기가 신경 써야 하니 본인의 성향에 어울리는 운동을 찾아 꾸준히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경제적 자유를 외쳐오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것에서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립적 인간. 성인이 되면 스스로 생각해 결정해나가는 삶을 산다는 게 참 당연한 말인데도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마음이 어둡고 지칠 때도 많습니다. MBC 예능 PD 입사 3년 차에 당시 떠들썩했던 해직 PD 리스트의 당사자가 되기도 했던 그에게도 해직 무효 판결을 받아내 복직하기까지의 시간이 특히 그랬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일상을 놓치지 말라고, 너무 막연한 미래를 그리기보다 매일 하나하나 마음을 쏟아보는 게 도움 되더라고 말합니다.


단독 연출한 프로그램 <가시나들>은 합격수기에서 꿈꿨던 그의 이상이 이 프로그램에 담겨 있어 다시 한번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는 여정을 노년의 일상과 함께 보여주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었던 가슴 따스한 프로그램입니다. 역주행 하셔도 좋습니다.


스스로 자기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온전히 자기 다리로 서 있을 수 있었기에 이제는 결혼도 하고, 새로운 직장에서 또 다른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는 권성민 저자. 그 시작은 내 방 하나였습니다. 자립적 인간이 되기까지 여정을 되돌아보니 오롯이 혼자만의 발걸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볕과 물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꼰대 대신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저자의 여정을 보여준 에세이 <서울에 내 방 하나>는 홀로서기를 꿈꾸거나 좌충우돌 진행형인 청년들에게 길잡이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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