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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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아웃라이어>, 역경과 핸디캡의 힘을 보여준 <다윗과 골리앗>, 직관이라는 첫 2초의 힘을 보여준 <블링크> 등 미국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베스트셀러 저자 말콤 글래드웰의 새 책은 어떤 주제일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6년 만에 나온 신작은 바로 낯선 사람을 대할 때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오류를 콕 짚어낸 <타인의 해석>입니다.


깜빡이를 켜지 않아 경찰에 의해 차를 세웠고, 체포당한 후 유치장에서 자살한 샌드라 블랜드의 사건으로 포문을 엽니다. 도대체 단순한 교통단속이 자살로 이어질 만큼 어그러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타인의 해석>은 우리가 낯선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고, 그로 인한 피해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상대방의 언어와 의도를 오해해 파탄으로 이어진 사례를 하나하나 파헤칩니다. 왜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안다고 착각해서 비극에 빠지게 되는지, 그렇다면 타인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거짓말을 눈치챌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스파이의 정체가 탄로나는데 십수 년이 걸리고, 피의자를 만난 판사보다 기록만 가진 인공지능의 보석 결정이 더 정확도가 높았고, 히틀러의 책만 읽은 처칠보다 히틀러를 직접 만난 당시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잘못된 판단을 했습니다. 낯선 이가 면전에서 거짓말을 하면 눈앞의 단서를 잘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타인을 파악하는 데 서투르다는 걸 보여줍니다.


양손으로 악수를 건네면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직관적으로 판단해버리진 않았는지요. 몇 가지 단서를 보고 다른 사람의 심중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자신한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우리 자신은 미묘하고 복잡하며 불가해한 존재로 취급하면서, 낯선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말콤 글래드웰의 이 말을 듣지 않았다면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내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낯선 이에게 속아 넘어갈까요. <타인의 해석>은 진실기본값 이론, 투명성 관념 맹신, 결합성 무시라는 세 가지 이유를 꼽습니다.


먼저 타인이 정직할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신뢰하고, 진실을 기본값으로 둡니다. 그러다 의심이 든다면? 그에 관한 의심이 충분해지기 전까지는 계속 믿습니다. 영화에서는 거짓말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바로 잡아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으로는 타인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상대방의 실체를 아는 척하는 데서 일어나는 오류입니다. 보통 성적 의도를 왜곡하는 성폭력 사건에서 등장하는 상투적인 변명인데, 이걸 우리도 평소에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행동과 태도를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범죄자는 범죄자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믿죠. 하지만 나라마다 표정을 제각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보니 놀라운 감정밖에 들지 않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행동과 결합하는 맥락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은 전에도 자살 시도 전적이 있었기에, 우울증이 심한 사람이 자살을 한다고 생각할 법 합니다. 하지만 말콤 글래드웰은 실비아 플라스가 사실상 자살하기 쉬운 환경에 놓였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특정한 행동은 특정한 조건에서 일어난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걸까요. 기존의 방식과 반대로 생각하면 완벽하게 타인을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걸까요. 낯선 이와의 대화가 틀어지면 우리는 낯선 이를 비난합니다. 진실을 기본값으로 두지 않은 채 의심만 하며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법입니다. 신뢰를 포기하고 사는 건 더 나쁜 일이니까요.


<타인의 해석>은 낯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탐색에 실제적인 한계가 있음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에 초점 맞춥니다. 나쁜 경찰관과 기분이 상한 젊은 흑인 여자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처럼 사회가 낯선 이에게 말 거는 법을 알지 못할 때 얼마나 큰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끔 합니다.


이번 신작도 기대 이상으로 새로운 시각을 선사해 줬습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는 말이 여기에 딱이겠어요. 분량이 두툼할 만큼 어마어마한 사례로 가득한 책인데도 시간 순삭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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